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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Mar 27. 2022

굴전 만들기

난생처음 만들어본 (+ 먹어본) 굴전

얼마 전에 오아시스 어플로 차주에 먹을 식자재를 고르다가 한정 세일하고 있는 굴을 보았다. 후기에 굴전을 해 먹었다든지 국에 넣으니 맛이 좋았다든지 하는 리뷰를 보고 사놓으면 뭘 해 먹든 요긴하게 써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털나고 한 번도 굴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왜 굴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끼니마다 고기를 찾는 사람이라 엄마도 그에 맞춰 고기 베이스의 국과 반찬을 주로 만들었다. 시댁에서 처음 설을 보내는데 떡국에 굴이 들어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너무 비려서 한 숟가락 떠먹고 어머님한테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했었다. 내 몫의 떡국은 남편이 다 먹었다.


"아빠, 굴 좋아해?"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맞추던 아빠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당연히 별로,라고 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바로 한정 세일이고 뭐고 패스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없어서 못 먹지, 굴전 안주로 최고지. 전집 가면 굴전 열몇 조각에 얼마씩 하는 줄 아냐. 그거 한 접시 시키고 술 한잔 먹으려고 하면 집어먹을 때마다 눈치보기 바쁘다니까."


그래? 굴전이 그렇게 맛있단말이지? 그럼 우리 아빠 호 강한 번 시켜드려야지. 오아시스에서 파는 굴은 300g밖에 안돼서 좀 적은 것 같아 보였다. 네이버 쇼핑을 검색해보니 통영 굴 산지 직송 1kg에 홍합 약간 서비스까지 주는데 가격차이가 별로 안나길래 그래, 너 낙찰. 바로 결제.


굴로 된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지만 휴직기간 끼니마다 음식을 해댄 짬밥을 믿고 무작정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남동생 부부도 초대하라고 했다. 아빠는 내가 다 같이 모여 집밥을 먹자고 제안하는 것을 기뻐했던 것 같다.


"너 내일 올래? 굴전을 좀 하려고 하는데."


남동생은 알았노라,  "굴전 좋지" 했다. 먹어본 적이 있나? 하긴, 저도 군 생활하며 술 실컷 마시고 다녔는데 안주거리로 안 먹어봤을 리는 없겠다.


일단 얼음 그득한 봉지에 포장된 굴을 뜯었다. 신선한 굴은 비린내가 안 난다더니 과연 그랬다. 뽀얗고 하얀 굴을 스테인리스 볼에 왈칵 쏟았다. 자, 이제 얘를 씻어야 하는데. 어젯밤에 굴 요리 레시피를 몇 개 훑어보면서 학습한 내용을 상기하며 소금을 밥 숟가락으로 푹 퍼서 넣었다. 깨끗해 보이는 굴이지만 먹기 전에 반드시 몇 번 소금물로 헹궈야 한다고 했다. 굴이 눌리지 않게 손으로 휘휘 저으면서 씻고 체에 밭쳐 물을 빼고를 몇 번 반복했다. 씻을 때마다 회색 먼지 같은 건더기가 뜬 회색빛 물이 나왔다. 혹시 먹고 배탈 날까 봐 좀 과하다 싶게 헹궜다.


다음은 부침가루 입히기. 굴이 1kg 되다 보니 양이 좀 많았다. 남동생 올 시간이 20분밖에 안 남아서 굴을 하나씩 떼다 부침가루 묻히고 계란물 입히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냥 위생봉지를 꺼냈다. 부침가루 투척 튀김가루 소금 후추 약간 투척. 굴을 쏟아부은 뒤에 봉지 입구를 빙빙 돌려 마구마구 조물거렸다. 하얀 가루가 물컹한 굴에 골고루 달라붙었다. 얼추 눈대중으로 계란 예닐곱 개 정도 깨면 될 것 같아 새 그릇에 넣고 휘휘 저은 뒤 부침가루를 뒤집어쓴 굴을 몽땅 쏟아부었다.


이제 부칠 차례. 옆에서 도와준다고 있던 남편에게 부탁했다. 워낙 똥 손이라 내 음식을 망칠까 봐 불안해서 친절하게 시범을 보였다.


"굴이 으깨지지 않게 하나씩 떠서 프라이팬 가장자리부터 나란히 올려놓는 거야."


남편도 내 굴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심기일전했다. 내가 말한 대로 홍고추 한 도막을 굴전에 올려 노릇노릇 예쁘게 부쳐 그릇 위에 탑 쌓듯 쌓았다. 기특해. 고마워.


기름 냄새가 올라오니 가뜩이나 굴도 싫어하는데 맛보기가 내키지 않았다. 거창하게 썼지만 만드는 과정도 단순하고 특별한 스킬이 필요한 음식이 아니라서 왠지 내가 아는 그 비린 굴 맛일 것 같아 맛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남편에게 대신 먹어보라고 했다.


"정말 맛있어."


남편 눈이 똥그래졌다. 그래? 맛있다니 다행이다 하며 식탁을 세팅했다. 계속 굴전을 부치던 남편이 내게도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남편은 자기가 반 먹고 남은 반쪽을 내 입에 쏙 넣었다. 왜 그래. 근데 응? 이게 내가 아는 그 굴이 맞는지. 하나도 안 비리고 고소한 게 정말 맛있잖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성공했으니까 생색 좀 내야지. 흐흐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 굴전과 홍합 넣은 어묵탕. 아삭이고추무침. 꽈리고추무침. 파래무침. 전부 내가 재료만 사다가 홈메이드로 만든 반찬이다. 내가 직접 만든 것들로 한상을 그득 차리니 뿌듯했다. 거기에 아빠가 사 온 한우육회까지 곁들이니 6인용 식탁이 풍성하게 가득 찼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렇게 진수성찬이야?"


굴전이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만족한 얼굴로 오물오물 집어먹는 가족들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항상 우리가 간다고 하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맛있냐고 묻고 또 묻고. 맛있다고 하면 행복한 표정으로 웃다가 좀 싸줄까. 하고 말했다. 내가 올케를 보며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좀 놀랐다. 좀 싸줄까?


"누나가 음식 솜씨가 좋아져서 아빠가 좋겠어."


"너네 누나 음식 많이 늘었지. 먹을 만 해."


밥때 되면 맨날 맛이 있네 없네 부실하네 잔소리 일색이던 아빠가 언제부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해달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함바집을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약속이 없는 날은 꼬박꼬박 집에서 밥을 먹고 잘 먹었다고 가끔 말하기도 한다.


오늘의 굴전은 대성공. 아빠와 남동생이 굴전 킬러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남편이야 시댁에서 워낙 굴을 잘해 먹고 커서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다. 다들 잘 먹어서 기분은 좋은데 묘하게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엄마는 내가 뭘 잘 먹고 뭘 안 먹고를 잘 알았었는데 과연 아빠나 남동생은 그런 것을 알고 있을까. 굴 같은 것을 구입한 것도 그걸로 뭘 만들어본 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것을, 오로지 가족을 위함이었음을 아마도 모르겠지. 굴의 재발견에 만족하면서도 양가감정이 들어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 글을 쓰던 중에 남편에게 물었다.


"굴전 먹어본 적 있어?"


남편은 애교섞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먹어본 적 있어.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굴전은 처음 먹어봤어. 고마워. 부인은 굴 싫어하는데 아버님이랑 남편 주겠다고 열심히 만들었잖아."


에휴. 내 마음 알아주는 건 남편밖에 없구나. 기름 냄새 맡아가며 굴전 부치느라 고생하고, 맛있게 먹어준 남편. 그리고 굴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을 기억하는 남편.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는 말을 잊지 않는 남편이 고마워서 꼭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남편은 졸린지 눈을 꼭 감고 꾸벅 졸며 잠시 내 품에 안겨있다가 비실비실 일어나 대학원 숙제를 마무리하겠다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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