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라인(Police line) 걷어도 되나요

#13. 엄마의 유해를 온전히 모시고 싶었던 남동생

by 풍선꽃언니

엄마를 동화 경모공원에 안치하던 날, 아직 따뜻하던 유골 항아리를 올려놓고 각자의 작별인사를 했다.

사람 인생 참 별거 없다. 죽으면 이게 끝이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울부짖고 발악하고 엄마 다시 돌아오라고 떼쓰고 망연자실하여 더 이상 뭘 할 말이 남아있지도 않았던 나는 엄마에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엄마를 안심시킬 법한 말을 하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며칠 안 지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니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껄였던 것 같다. 대충 아빠는 내가 책임진다, 동생도 잘 챙기겠다 뭐 이런 소리였던 것 같다.


엄마의 눈엔 나 역시도 혼란스럽고 단단하지 못한 영혼에 불과했겠으나 그래도 엄만 나를(내 동생 보다도) 믿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우리 딸은 독해. 지가 알아서 지할일은 잘해. 지 밖에 모르는 년. 그래도 어쨌든 지 앞가림은 잘하니까
(엄마의 오해다, 난 늘 엄마랑 아빠, 동생을 맴돌며 살아왔으나 엄만 늘 나더러 지밖에 모른다 했다)

엄마를 안치하는 그 순간은 그 정신에 엄마가 안심할만한 말들을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걱정 마, 내가 엄마 몫 할게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엄마처럼 못할 것 같은데, 엄마같이 상처 받아도 무조건 베풀며 돌진하는 무모한 사랑(엄마의 최대 단점이기도 했지만). 그런 거.


그래도 그냥 내가 엄마만큼 해 낼 것처럼 마구 말을 쏟아냈다. 너무 말이 많았나 보다. 식구들이 온통 기다리고 있어 의식해서 인지 아빠는, "이제 그만하고" 하며 나를 물러 세웠다.


이모는, 엄마 빈소를 정리하기 전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나와 내 동생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언니, 얘네 이제 내 딸이랑 아들이야. 내가 챙길게, 나름 엄마 형제자매가 할 법한 말들. 나는 속으로 그런다고 죽은 엄마가 살아오니, 이제 와서 부채의식을 덜고 싶어 해 대는 말들이 역겹게 느껴졌다.


나무 조각처럼 딱딱하게 느껴지는 그 손을 잡고 있으면 이기심과 무상식으로 점철되는 그 집안 특유의 유전자가 나에게 오염될 것만 같아 귀로 들리는 음성들도 손의 촉감도 불쾌하고 거슬렸다. 아빠도 그 꼴이 우습게 느껴지긴 매한가지였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조 섞인 어투로 나지막이 내뱉었다. "웃기고 있네"


"외숙모 반찬이나 한 번씩 도와주세요"

외숙모는 "얘가 어려운 부탁을 하네" 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말이라도 내 그러마, 위로될 만한 말 한마디 붙일 만도 한데 그 태도를 보며 본성에 솔직하네 싶었다. 당신은 그래도 위선자는 아니야. 하고 생각했다.


'엄만. 내가 언니니까 이 여자의 자식들을 내가 챙겨야 한다고 말했지. 나는 남보다 못한 이 여자의 자식들 여가생활 즐거우라고 남편하고 싸움박질하며 영화표를 끊어다 바쳤어. 엄마 기쁘라고'


하. 엄마가 무슨 허튼짓을 한 건지, 내가 그 집구석을 제발 끊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내 말이 맞았잖아. 죽은 엄마에게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장례는 끝났고 빈소 정리도 다 끝났다. 상복을 반납해야 하니 모두가 장례식장 한쪽 복도에 있는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해 환복을 마쳤다. 이제 작별의 시간.


외삼촌이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날짜를 잡으면 연락하라 했다. 이모는 삼우제 떡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단칼에 거절했다. "됐으니, 알아서 하겠다"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동생, 그리고 남편과 올케만 남았다. 집에 돌아와 우린 엄마가 없음을 여실히 느끼며 모르긴 몰라도 한 번씩은 엄마가 떨어져 죽은 우리 집 거실 창문을 쳐다보며 가슴속 깊은 진통을 느꼈을 것이다.


술에 취한 아빠는,

"씨발 것들, 지 언니가 작년에 같이 밥 한번 먹는 게 소원이라고 그렇게 얘길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못 하겠다 자빠지더니 죽으니 이제 와서. 느이 엄마를 생각해서 수십 년을 참았으나 이제 끝이다 씨팔"


남동생이 물었다.

"누나, 엄마 수사 진행 중인 그 담당 형사 연락처 알아?"

모르지 인마. 내 거기까지 챙길 정신이 어디 있었겠니.


"예, 제가 돌아가신 분 아들입니다. 폴리스라인 정리 언제쯤 해주시나요? 저희 어머니께서 불의의 사고로 이렇게 되셨는데 아직도 지금, 저렇게 해놓으신 상태라 어떻게 저희가 들어갈 수도 없고. 비도 오는데, 저희 어머니 시신을 보니 충격으로 이가 두 개 정도 없으시더라고요. 그것 좀 찾아야겠습니다. 조치해주세요. 예. "


한참을 경찰관과 통화하던 남동생은 일단은,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담당 형사의 답변을 듣고 혼자 엄마가 누워있던 2층 데크로 나섰다. 나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엄마의 사고 현장, 누워있던 흙. 부러져있다는 나무를 보면 그 광경에서 나를 끄집어 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을 거 같았다.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내려가 있던 동생은 땅을 헤집고 헤집었지만 엄마의 "유실된 이"를 찾을 수가 없다며 한 숨을 쉬며 집으로 올라왔다. 엄마의 몸이 온전하지 못한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가 추락한 곳만 나무가 있어 27층에서 추락했음에도 시신이, 특히 얼굴이 그 마만 했던 건 그간 엄마가 믿던 천주와 성부가 도왔기 때문이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잠시 후 담당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동생이 경찰서에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엄마의 "이"를 현장에서 찾았다고 찾아가라는 전화였다. 아빠도 함께 가겠노라 나섰다. 남동생이 신경 쓰지 않았다면 엄마의 이는 화단의 흙 어딘가 깊이 심겨 비에 눈에 씻기고 닦여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엄마는 추락의 충격으로 이가 없어진 모습으로 남을 뻔했지만 이렇게 한 개나마 찾아서 다행이었다. 고맙게도.


아빠와 남동생이 경찰서에 도착해 담당 형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실족사로 결론이 날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케이스 종결이 돼야 결론도 확정적일 것이지만 우릴 위로하기 위해서였는지 굳이 사무실 밖까지 뛰어나와 그리 말해 주었다고 한다.


아, 근데 하는 얘기가

엄마의 여동생이라는 분이 연락을 하셨었다고,

꼬치꼬치 사건 경위를 묻더라며.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지,
뭐가 그렇게 의심스러운 건데,
새삼스럽게 엄마 신변에 관심이 생겼나요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주제에.
얼마 전에 이모 가게에 엄마가 들렀을 때
엄마한테 음식값 다 받았더라
식당 하면서 몇 천 원 밥값 아까워서 돈 받았니.
번번이 돈 내고 밥 먹은 거 어떻게 아냐고.
가게에서 엄마가 결제한다 내민 카드 내 카드였어.
엄마 성격에 동생도 장사하느라 힘들다고
얻어먹지도 못했을 텐데 한 번쯤은 권해 보지 그랬어
"어유 언니, 내 가게 와서 무슨 돈이야. 그냥 먹고 가"

엄마는 죽고, 나는 부끄러운 내 뿌리의 한 끝을 잘라냈다.


엄마의 자유와 나의 슬픔.

그래도 엄마가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면

내가 슬프고 엄마가 행복한 게 낫지


엄마, 오늘은 기분이 어때?

조금은 홀가분 해졌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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