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잘못이 아니야.
#14. 죄책감, 남겨진이들의 몫
장례식이 다 끝나고 집엘 돌아왔을 때 누구도 엄마가 추락했다는 창문이 어느 쪽이었는지 아빠가 사고 당일 아침에 발견한 현장이 어떤 상태였는지 먼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자식들이 묻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그 상황들을 복기하며 사고인지, 자살처럼 보이는지 이게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인지 터놓고 말을 함으로써 당신을 괴롭히는 내면의 해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는 특히 엄마의 사고가 집에 함께 있을 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한 집에 있던 아내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실 창문으로 떨어져 죽어버렸고 이게 어디 평범한 일인가.
아빤 (사고라면) 분명 "OO아빠" 하고 자길 불렀을 것 같다, 하다못해 그 시각에 내가 왜 음악을 듣고 있었지, 내가 왜 거실 테이블을 안 가져다 버렸지, 하필 그날 왜 건강검진 예약을 해놨지... 사고 당일의 행적을 더듬으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너네 엄마가 눈에 띄지 말래서 방에 들어가 있었다. 거실 오디오 스피커가 자길 감시하는 거 같다고 버리래서 작은방에 옮겨놨을 뿐이다. 아니, 버리랄 때 버릴걸 괜히 방에 옮겨서 이 사달이 났다. 거실 테이블 버린댔더니 못 버린다고 난리 치는 통에 뒀다가 그거 밟고 올라가 죽었네. 너네 엄마가 뭐라고 하든 버렸어야 했는데. 건강검진 괜히 예약해서 내가 쫄쫄 굶고 있으니까 너네 엄마가 밥해준다고 하다가 죽은 거 아니냐.. 횡설수설, 화내다가 자책하다 분노하다 슬퍼하다, 엄마의 죽음을 자신이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침묵해버렸다.
빈소가 차려진 첫날과 이튿날 남편과 아빠는 이 집에 벌써 두 번 다녀갔다. 사고 당일 저녁, 분명 아빠는 아침까지 엄마와 머물던 집이고 남편은 이틀 전 주말에 나와 함께 머물던 장모님 댁인데 집안에 감도는 음산한 공기며 아주 불쾌한 낯섦이 느껴졌다고 했다. 나도 이 상황이 황당하고 납득이 안돼 현장실사를 하겠다고 따라나설까 싶었다. 그러나 엄마가 죽은 집에 가면 혹여 절제를 못하고 무슨 짓을 해도 할 것만 같아 멍청하게 그냥 서있기만 했다.
아빠 잘못이 아니야,
그런생각 하지마요.
"어머님 자살 일리가 없어, 자살하려고 테이블에 일부러 올라간다고? 그러기엔 너무 높아. 밖에 내다본다고 뭐 또 감시장치 있나 보시려고 하다가 휘청하신 거 같아 그렇게 말고는 설명이 안돼. 어, 위로하는 말 아니라니까. 네가 가서한 번 봐봐" ㅡ 남편
"누나, 보나 마나 엄마가 자살 일리가 없어. 무조건 실족사야. 엄마가 믿는 종교에 자살은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자살, 아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나 중위 때 휴가 나와서 엄마랑 영화도 봤어. 그 무슨 천주교 영화. '아들,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하면 안 돼 천국 못가.' 수도 없이 말했다고. 그리고 생각을 해봐. 자살하면서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고 간다고? 엄만 그럴 리가 없어. 그러니까 누나도 자꾸 뭔가 막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 실족사 확실해" ㅡ 남동생
"처음엔 너네 엄마가 노상 죽고 싶다 힘들다 잠도 못 자고 못 먹고 헛소리하고 하니까 자살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암만 생각해도 요리하다 말고 뛰어내리는 사람이 어딨냐. 아침부터 카레 끓인다고 고기, 감자 뭐뭐뭐 꺼내 달래서 내가 다 꺼내 주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죽으려는 사람이 부엌 하고 거실 창문 양쪽 다 열고 말이 안 되지. 애초에 뛰어내린다는 자체가 보통 깡다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방충망 열고 밖에 뭐 자기 감시하는 거 있나 본다고 그런 거 같아. 나이 먹으면 기우뚱 그럴 수 있거든. 집안에는 웬만한 거 자기가 다 확인했고. 이제 밖에 뭐 있나 의심스러운 거지. 창틀에 방충망 만지고 이거(문틀) 만지고 해서 봐봐. 여기 시꺼멓게 손자국" ㅡ 아빠
자살이면 어떻고, 실족 사면 어때. 죽은 건 똑같은데.
남일이라면 나도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굳이 어떻게 죽었든 그게 중요할 것이 아니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참, 막상 이런 일 닥쳐보니 유족된 입장에서는 그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렇다. 똑같이 죽었는데 "자살"이라 생각하면 아니, 우리 가족이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 모든 순간이 다 내 착각이었던 거야? 엄만 불행했는데 우린 엄마가 불행한 줄도 모르고 행복하다고 추억 타령이나 했다는 거야? 죽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 미안함 같은 것들이 너무 커져 가뜩이나 지치고 복잡한 심신을 찢어 죽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고 며칠 뒤부터 나는 집중적으로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엄마 노트부터 성경책 침대 매트리스 화장대 베겟속.. 하다못해 벽걸이 시계 속, 안 쓰는 가방 옷가지 주머니, 유서야 나와라, 벼르는 사람처럼. 나온다면 나한테 남긴 말은 뭔데. 근데 또 유서가 막상 나오면 어떻게 하지, 두려워하면서 남편이 출근한 사이, 아빠가 외출한 사이 상처를 덮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들쑤시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집요하게 집안을 뒤졌다.
엄마가 앉아 커피를 마시던 소파의 그 자리에 소파 쿠션을 베개 삼아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직전까지도 집안을 한참을 뒤졌다. 유서는 아직이고 내심 실족사가 맞을 거야, 조금씩 내 안의 감각도 그에 맞춰 조금씩 진정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심경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고 지금의 나를 나도 잘 모르겠다.
아빠는 좀 전에 친구들과 위로의 자리를 갖겠다고 나갔다. 집구석에서 우울에 절어 있는 딸하고 하루 종일 볶닦이는 것으로는 도무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아빠가 집 밖에 나설 기운을 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빤, 나더러도 여름이나 다름없으니 호수공원에 강아지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그런데 난 안다, 아빠가 내가 슬픔에 매몰되어 무슨 우발적인 짓이라도 할까봐 집에 혼자 두기 불안해 그런다는 것을. 내가 힘을 내야지.
엄마의 죽음과 원인에 대해 나만의 확신이 없는 지금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나는 지금 너무나 혼란스럽다. 뭔가 복잡한 내 속 안을 비워보고자(쓰는 행위가 정신건강에 좋대서) 시작한 글쓰기인데 아직은 나 스스로 끄집어낼 준비가 안된 주제에 대해 자꾸 정리하려 하니 외려 더 답답해지는 것 같다.
왜 엄마는 마음이 그렇게 약했냐고, 원망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죽은 엄마가 아직 내 곁을 떠돌고 있다면 갑자기 죽은 것도 억울한데 아파하는 내가 눈에 밟혀 또 자신을 돌보기보단 날 걱정하느라 갈 길이 이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다.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내 탓을 한다.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그전에 일련의 사건들과 엄마 원가족 간의 불화로 아팠다. 엄마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내 몫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 속으로 낳은 딸이고, 집안의 유일한 여자니까 감정의 회로가 다른 남자들과 나는 조금 달랐어야 했다. 나는 엄마한테 어린 딸이고만 싶어 했다. 치대고 사랑받고 싶어 했다. 엄마한테 너 왜 이렇게 유아틱 하니, 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어도 딸, 네덕에 든든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엄만 늘 나를 지키고 보호해줬는데 엄만 누가 지켜줬던 걸까.
나는 뭘 했던 걸까.
엄마, 정말 미안해.
내가 서른다섯이나 먹어서도 어른스럽지 못했어.
내가 엄마의 울타리가 되지 못해 줬어.
이제야 알았어.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