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꽃언니 Jul 05. 2022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된 등산의 단맛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며?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갈 거
뭐하러 그 개고생을 해가며 등산을 해
땀나고 힘들게. 진짜 최악이네.

체육관에 다니면서 입시체육을 하다 보니 엄마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넌 운동은 힘드니 공부를 해야 한다. 운동은 보통사람이 할게 아니다. 그때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비롯한 예체능에는 아예 관심도 두지 말라고 했다. 일단 운동은 몸이 힘드니까. 음악이나 미술은 재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창의적인 뭔가를 짜내느라 고생이니 공부가 제일 할만할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입시체육은 그동안 깔짝이던 내 운동능력의 한계를 보는 일이었고 시작한 이래 두 달간 나는 수도 없이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체육관에 가서 한 시간 반 개인교습을 받고 나면 집에 와서는 너무 힘들어 씻을 기운도 없었다. 사람이 적당히 힘들면 배가 고프다는데 대단히 힘들면 밥맛도 없다고들 한다. 세상에, 나는 운동만 하고 나면 입맛이 뚝떨어져 하루 종일 물밖에 못 먹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력이 쇠했는지 근육통과 입병을 달고 산다.


체육관에서는 워낙 근력이 없으니 수업시간에 진도 나가기가 힘들다며 주말이나 평일 수업 없을 때 근력운동을 따로 시간 내서 할 것을  권했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헬스장 가서 뭔가를 자발적으로 하려니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았다. 대신 그간 해오던 필라테스는 갔다. 근육통이 풀리는 것 같아서. 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꾸만 예쁜 필라테스 레깅스를 사댔다. 세일할 때 알람까지 맞춰두니 뭔가 뜰 때마다 자기 전에 결제 삼매경이었다. 남편은 내가 살이 빠져서 예뻐진 몸매가 기분이 좋아 자꾸 사대는 줄 알지만 체육관에서 전투적으로 운동하느라 잃어버린 나의 여성성을 이렇게나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알려나.

점프해서 스쿼트하기, 스무개만 해도 땀이 주르륵

체육관에서는 시키니까 어찌어찌하겠는데 도저히 헬스장을 따로는 못 다니겠다는 나의 말에 코치는 등산을 권했다. 평지에서는 뛰시고 올라갈 때는 런지 효과가 나니까 한번 해보시라고. 나는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끝없이 투덜거리고 있다. 이런 나를 받아주며 같이 땀 흘리고 책임감을 보여주는 코치의 노력에 부흥하고자 주말에 등산을 하겠노라 큰 결심을 했다. 남편은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토끼눈이 되었다. 평일에 일하고 와서 힘들어 죽겠는데 와이프가 주말마다 등산을 같이 가줘야겠다고 하니 무척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나도 그렇지만 사실 직장을 다니면 하루 종일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을 해도 기가 빨린다. 단지 내 골프연습장에서 작대기 몇 번 흔드는 것으로 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다 여기는 남편에게 느닷없이 북한산 얘기를 꺼내니 남편은 격렬하게 거부를 외쳤다. 불쌍한 남편, 나 혼자 산에 보낼 건 아니지.


경찰관으로 임용되기 전까지는 내 안에 나도 모르던 체력이 있는지 몰랐다. 보통 내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 운동능력이 좋았음을 순경 공채 실기 평가 때 깨달았다. 당시엔 이렇게 체육관에 가서 개인교습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필기시험 합격하고 공무원 체력 학원이라는 곳에 가서 실기 유형을 익힌 것이 다였다. 실기 당일엔 절박해서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건지 꼴찌로 합격한 필기성적을 실기점수로 뒤집고 합격을 했다. 실기를 보고 일주일 정도 눕지도 앉지도 못할 근육통에 수액을 맞아가며 자리보존을 하긴 하였으나 합격한 게 신기해서 억울하지 않았다.


남편은 본인이 유년시절 체력장 특급이었다며 자신 있어했지만 그건 마흔이 다된 지금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집 뒤에 동산을 오를 때도 아빠와 내가 뛰어 올라갈 때 혼자 이 집 안 식구들은 산을 왜 뛰어다니는 거야 하며 입이 대빨 나왔다. 그런데 북한산이라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듯 꼭 해야겠냐고 몇 번을 묻다가 내가 입시 떨어지면 그게 더 큰일 아니냐는 말에 입을 꾹 닫았다.


남편과 나는 착장을 했다. 나름 수도권에서 높은 산이라는 북한산에 오르는데 갖출 건 갖추자며 아웃도어 아웃렛을 뒤졌다. 둘 다 스포츠웨어를 생전 구입한 적이 없는데 미친 듯이 뒤져 등산화를 사고 방풍재킷을 샀다. 등산장갑도 사고 흡습속건에 탁월하다는 셔츠도 몇 개 샀다. 등산스틱은 안 샀다. 몸뚱이 끌고 올라가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작대기 까지 어떻게 들고 올라가냐며. 그 말엔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체력증진을 해야 한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참고했다. 또 내 안에 숨어있는 나도 모르던 운동능력이 발휘되었는지 솔직히 이 정도면 할만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산에 오를 때마다 말이 없어지고 말을 할 땐 투덜거렸다. 당떨어진다고 멈춰 서서 초코파이를 게걸스럽게 씹어먹었다. 그만하고 내려갔으면 하는 의중을 넌지시 비추곤 했다. 다른  커플들을 보면 남자가 앞장서고 지친 여자를 다독이며 올라가던데 우린 반대였다. 빨리 가자는 나와 그만 가자는 남편. 앞서가는 건 늘 나였고 점점 나와 멀어지는 간격을 좁힐 의지도 상실한 남편은 짜증이 폭발해서 소리쳤다.


"제발 천천히 가. 나 이러다가 급성심정지 올 거 같아.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넌 어떻게 할 건데?"


아까까지 점점 까매지던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얼굴이 너무 하얘서 정말 남편이 등산하다가 죽을까 봐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너 체력장 특급이라며. 어떻게 남자가 돼서 마누라보다 운동을 못하냐."


"너는 맨날 운동하는 게 일이지만 나는 아니라고. 힘들어 죽겠다고. 언제까지 올라가야 되는데."


남편은 소리치긴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수치심이 가득했다. 아마 속으로 그러게, 왜 내가 너보다 운동을 못하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과 나는 뒷심의 차이가 있었다. 늘 느끼던 거지만 등산을 하면서도 새삼 느꼈다. 나는 공부건 일이건 전력 질주하다가 마지막에 흔들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뒷심이 약하다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듣고 컸다. 그러나 남편은 평소에 천천히 꾸준하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내서 해내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등산을 하면서도 정상이 다되어서 나는 체력이 점점 방전되는 것을 느끼며 이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표지판을 보며 정상에 임박했다는 것을 확인하면 갑자기 두 눈이 반짝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어. 정상 못 찍으면 네가 또 오자고 할 거잖아."


초코파이를 또 뜯어먹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상을 향해서.


지난 두 달간 우리는 북한산을 총 여섯 번 올랐다. 가다가 비가 오거나 해서 중간에 내려오기도 했다. 정상까지 가는 구간엔 암릉구간이 있는데 우리는 같이 줄을 잡고 비틀거리며 올랐다. 백운대 정상의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원효봉에 올라 산세를 둘러보며 이 넓은 세상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미물 인가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했다. 올라갈 때는 쓴맛인데 정상에 올라 쐬는 바람은 단맛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등산을 그렇게 하나보다 싶었다. 의상봉에 오를 때는 처음부터 암릉구간이라 시종일관 네발로 기어 올라가며 서로 조심하라 외쳤다. 등산하다가 죽으면 안 되니 아찔한 상황에서 서로를 열심히 챙겼다. 등산의 힘듦도 힘듦이지만 그보다 값진 것은 남편에 대해 샘솟는 애정이었다. 다른 봉우리에 비해 막상 정상에 올라서는 별 볼 일 없던 의상봉에서 나는 남편에게 찐하게 뽀뽀를 했다. 사진으로도 남겼다. 안타깝게도 사진은 내가 남편을 잡아먹는 것처럼 나오긴 했지만.


지난주 일요일은 폭염이었다. 한낮의 온도가 35도였다는데 날씨를 안 보고 간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표지판에 난이도 <상>으로 표기된 의상봉을 오르고 둘 다 월요일에 아팠다. 그러나 북한산의 웬만큼 유명한 봉우리를 점령했다는 보람이 컸기에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건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등산을 열심히 한 덕에 남편은 빵빵한 힙을 얻었다. 암릉구간 끈을 잡고 오르다 보니 단단한 팔근육도 생겼다. 나는 원하던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 확실히 체육관에서 육상을 할 때마다 근육통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데 다리를 달달 떨면서도 산을 오르내리니 교습 강도가 할만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등산의 하이라이트는 하산 후 먹는 밥이다. 땀에 절은 지친 몸뚱이를 끌고 식당에 들어간다. 등산 대여섯 시간에는 천 칼로리 넘는 에너지 소모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집까지 차로 삼십 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우리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먹고 가기를 외친다. 북한산 앞에 진짜 맛있는 코다리 정식집이 있다. 거기 몇 번가고 그다음엔 순두부. 최근에는 냉밀면에 육전을 먹었다. 시원하게 막걸리까지 곁들이면 그 순간 인생의 모든 시름이 잊히는 기분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렇다.


등산장비는 다 갖췄고 등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취미로 등극했다. 비록 시작은 자발적이지 않았지만 삼십 대가 넘어서 나마 등산하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산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몸도 좋아지지만 새소리 물소리 들으면 정신건강에도 좋고 봉우리에 올라 느끼는 성취감도 좋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산 꼭대기에서 맞는 바람은 참 시원하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 등산은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기에 당분간 우리의 산행은 중지.


등산을 시작으로 운동의 기쁨을 느낀 남편은 다음 주부터 항상 콤플렉스였던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등산을 쉬겠지만 가을이 오면 단풍으로 예쁘게 물든 산에 오를 생각에 설렌다. 케이블카 타고 오르던 설악산도 가보고 싶고 그 유명한 지리산도 올라보고 싶다. 도장깨기 하듯 등산의 기쁨을 평생 만끽하고 싶다. 남편과 함께 우리 둘이 손 꼭 잡고서 말이다.


어차피 내려올 거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냐고 생각했던 우리 둘은 날씨만 허락한다면 한 달에 두 번은 등산을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전문 산악인이 될 것은 아니라 해도 취미로서 산에 오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92세 노모(老母)를 요양원에 모시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