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꽃언니 Dec 08. 2022

서른여섯에도 공부한다고 나설 용기

공부는 때가 있다. 때를 정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올해 못해서 내년에도 해야겠으면
그것도 괜찮아 끝까지 지원할게

시험이 끝났다. 아침에 글을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각에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해야겠지만 오늘 아침은 왜인지 이렇게 그저 소파 귀퉁이에 앉아 햇볕을 쬐며 커피나 한잔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남편은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했다. 오늘은 단축근무를 하는 날이라 세 시반쯤 퇴근하고 MBA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으러 안암으로 향할 것이다. 아빠도 늘 그렇듯 아침 운동을 하러 나갔고 앞으로 이십 분쯤 뒤에 귀가하여 나와 아침밥을 먹을 것이다. 루틴으로 가득한 일상 속에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내가 있고, 오직 나만 비 정형화된 일상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며 하루를 산다.

자기 전에 누우면 내가 오늘 특별히 한 게 뭐 있지, 생각해 보는데 뭔가 시간은 참 빨리 갔지만 한 게 참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의 공부란 늘 목적이 분명했고 그 결과물이 내 인생의 향방에 (좋게든 안 좋게든)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 되기 때문에 힘들었다. 한 번도 취미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주변에도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열하게 아등바등하며 사니 주변에도 자연스럽게 같은 코드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만나면 정서적인 대화를 나누며 웃고 울고 하는 중에도 가슴속에 품고 있는  <현실의 과업>의 무게가 커서  크게 웃지 못했고 깊이 슬퍼할 줄 몰랐다. 청춘에 청춘답자 못했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마는 그때의 그들과 나는 결과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서 비로소 안녕한 날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나선 무쇠의 뿔 같이 앞으로 돌진하던 20대의 우리는 멈췄다.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고 가정의 틀에서 새로운 역할이 생기는 생겼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보통 좋은 직업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미쳐있던 전우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기 위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령 요리를 배우거나 육아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 맘 카페 활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문화센터를 다니기도 하며 갑자기 인테리어에 심취하고 재테크와 노후대비 같은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어디 데코 잘되어있는 좋은 맛집이나 찾아다니던 애들이 마트에서 고등어를 산다던가 닭볶음탕용 닭을 산다던가 하는 식재료 중심의 구매 양상을 보인다. 이 모든 변화는 <여자 전우>들에게 공통적으로 도드라지는 현상이다. 이렇게 우리는 가정의 내무반장으로 무럭무럭 성장하여 아줌마가 되어간다.


나는 아마도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결혼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일찍 했다 싶은데(서른 살) 몇 년 사이에 주변 과반수가 거쳐가는 인생의 과정(엄마 되기)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 점에 대해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아무도(양가) 내게 강요하지 않지만 내 몸의 노화가 슬금슬금 느껴질 때마다 지금이라도 빨리 임신을 당장의 우선순위로 놓아야만 하는 건 아닌가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런 날은 출근한 남편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퍼붓곤 한다.

언제 낳지. 낳고 싶니. 어디서 낳아 어디서 키우고 싶니. 안 생기면 어떻게 하지. 딸을 원해 아들을 원해. 낳고 나면 누가 키우지. 어떻게 키우지. 애가 어디가 잘못돼서 태어나면 어떻게 하지. 난 노산이니까.
(나는 내년 서른일곱이 되고, 남편은 마흔이 된다)

나는 남편을 참 잘 만난 것 같다. 그와 스물한 살에 만나 함께 대학시절을 보내고 진로를 치열하게 보냈다. 어린 나이라 세속적인 조건보다 사랑이 더 중요했던 때 오누이처럼 같이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의 언어적 표현은 물론 비언어적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는 가끔 이렇게 내 멘털이 바사삭 부서졌을 때 세상 인자한 목소리로 진정을 시켜주곤 한다. 신기하게도 그가 나의 불안을 중재하면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이 낮아져 평온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다.

 언제 낳긴. 때 되면 낳겠지. 안 생기면 시험관 하면 돼. 그래도 안 생기면 없이 살지 뭐. 우리 둘이서도 행복한데 안 생기는 걸 억지로 어쩌겠어. 근데 생길 거야. 어차피 우리 직장 다닐 때 애 결혼시키는 건 이미 늦었어. 지금 생기나 몇 년 있다 생기나 달라질 거 없어. 대신 그전에 열심히 벌어놔야 애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할 때 우리가 떳떳하겠지. 무엇보다도 난 네가 제일 중요해. 네가 공부하고 싶고 이직하고 싶은 거부터 해. 내가 끝까지 지원할 테니까. 설령 애써도 안된다고 해도 그것도 괜찮아. 네가 해볼 거 다해봤으니 후회가 없을 거 아냐.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난 애 없어서 불안한 거 전혀 없어.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우리 애 낳으면 키워준다더라. 네가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고 살림하고 돈 벌고 혼자 절대 할 수가 없다고.

결과적으로 지난 5개월간 준비했던 이직 시험은 보기 좋게 탈락했다. 20대에 비해 무쇠의 뿔처럼 달리는 동력이 약했기 때문이었을까.


공부하면서 엄마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눈 밑에 바코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만큼 퀭해진 눈으로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책을 챙기면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었던 때. 입맛 없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하냐고 팽 신경질 내면서 꾸역꾸역 아침을 먹고 독서실로 뛰어가던 시절의 공부가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몰랐던 과거.


엄마가 이생의 삶에서 퇴장하고 두 해가 지났다. 지금의 나는 내 밥도 내가 하고 가족들의 밥도 내가 하며 뒷바라지를 한다. 물론 아빠도 남편도 공부하는 동안 우리가 각자 알아서 할 테니 넌 너만 생각해라 해 주지만 아빠는 당장 오전 운동을 다녀와서 배고픈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 남편은 퇴근 직후의 배고픔을 견디기 어려워 하기에  아침 일과는 냉장고에 먹을게 뭐가 있는지를 챙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주부로서의 책임을 핑계로 불합격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더 이상 누구의 뒷바라지를 당연히 깔고 공부만 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경제적인 무게까지 짊어지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어쨌든 반년 동안 책상과 운동장을 오가며 부산했던 수험은 불합격을 끝으로 일단 덮었다. 엄마의 죽음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심연의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덤벼든 수험생활과 불합격.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갇혀있기만 하던 근 2년간의 삶에 잠시나마 자유함을 느낄 여유를 주기로 했다. 남편 역시 근속 십 주년 기념 휴가를 아직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낼 것에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일단은 휴식을 한 뒤에 수험준비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그런데 참, 나는 시험이 끝난 직후 아무것도 안 하기는 또 찝찝했던지라 곧장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교육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혜택으로 이론+실습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기수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길래 많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강료를 결제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출석 체크해가며 앉아 줌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그러나 나는 아빠를 부양하고 있고 언젠가 아빠가 노쇠하면 가능한 한 다른 사람 손 타지 않게 하고 싶다. 시험이 끝났는데 방에 콕 박혀 수업을 듣는 내게 아빠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말했다.


"야, 너 나 늙으면 수당 타 먹으려고 그러지. 앙큼한 것."


그래 놓고, 친구들한테는 자랑을 또 하셨단다.


"우리 애는 나 늙으면 지가 보살피고 산다고 요즘 요양보호사 교육받고 있어. 하하하."


일단은 내게 주어진 현재를 잘 살자. 시작한 것들은 잘 마무리 짓자. 올해를 잘 마무리 하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내년의 나는 서른일곱 살의 전업 수험생이다.

늘 푸른 선인장 처럼 나의 삼십대도 한결같이 찬란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