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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Mar 28. 2023

니 생각은 안한다고 안나는게 아니더라

엄마, 나 잘지내고있었어. 이쁘지.

"이봐, 애들 왔네. 정신 좀 차려봐."


출입문을 열자마자 아빠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본능적으로 아, 엄마가 돌아왔구나 하며 무척 반가워 방정맞게 촐싹거리려다가 멈칫했다. 아니, 어떻게 엄마가 돌아와.


아빠와 합가하기전 옛 집(엄마가 죽은 집)에서 엄마는 식탁에 앉아 찻잔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얼굴은 기묘하게 하얬다. 그 느낌이 뭐랄까 레이저 시술 받았을 때 특유의 건강하고 탱탱한 그런 류의 맑음이랄까. 다만 그 하얀 바탕에 대조적이게도 눈주변만 유독 움푹 패여 음영이 졌다. 그래도 대체로 엄마의 상태가 좋아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반갑고 기뻤다. 엄마왔어? 하고 묻는 내 목소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하이 소프라노로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그래 왔다"


"엄마, 나 안보고 싶었어? 그래 혼자 집나갔다가 돌아오니 어때. 집 나가면 고생이지? 나보고싶었지? 내생각 안났어?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


나는 끝없이 앵알앵알 거렸다. 아빠는 엄마가 힘드니까 좀 진정하고 하나씩 물어보라고 말렸다. 남편은 내 손을 꽉 쥐면서 눈치좀 챙기라는 듯 눈짓으로 핏잔을 주었다. 나는 이제야 돌아온 엄마에게 화가나기도 했다. 정말 돌아온거지 엄마? 다만 태연한 척도 하고싶었고 궁금한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무척 엄마가 그리웠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엄마는 숨 넘어가듯 질문을 쏟아 붓는 나를 보기만 했다. 다 듣고있는 것은 같은데 입을 쉬이 열지 않았다. 한참을 보기만하다 했다. 낮은 목소리로 한번씩 들숨 날숨을 어가며 아주 천천히 한 마디 말을 꾹꾹 눌러서.


"그래, 우리 딸 보고싶었지. 니 생각은 안한다고 안나는게 아니더라."


잠에서 깼다. 새벽다섯시 반. 어둠속에서 눈을 꿈뻑꿈뻑 하며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얼마전에 엄마의 두번째 기일 제사를 지냈다. 엄마는 죽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꿈에서도 거의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게 못내 서운했다. 어쩌다 한번 나타나면 슬퍼졌다. 엄마는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얼굴이 명확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꿈의 세계에서 그저 나와 엄마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만 하거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실루엣만 보였는데 분위기마저 어둑했다던가 했다. 그런 꿈 속의 엄마는 만나도 힘들었다. 행복하지 않구나. 거기서도 행복하지 않아? 꿈에서 깨면 내가 잘못한게 없는줄 알면서도 자책하고 원망했다. 하루종일 짜증이 났다.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처음이었다. 멀쩡히 벌건대낮에 여느때 같이 평온한 집안에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의 엄마를 만났다.


"그래, 우리 딸 보고싶었지. 니 생각은 안한다고 안나는게 아니더라."


나는 엄마를 원망도하고 슬퍼도하고 그리워도 하고 엄마없는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살았는데 엄마는 알까. 내가 힘들고 괴로웠는데 지금도 안괜찮다고 외치고 싶지만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엄마는 알까. 나는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김에 이런 것들을 다끄집어 내어 털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꿈인데도 엄마가 실재한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우리 딸 보고싶었지. 니 생각은 안한다고 안나는게 아니더라."


엄마는 다 알고 있구나. 그러면 억울할 것도 없지. 갑자기 가슴이 벅찼다. 내가 작금의  상황속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가 봐주니까 신나. 내일 모레면 마흔이 다되는 결혼한 딸이 아직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칭찬받고싶고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 좀 웃기지만그런 스스로를 귀여워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푹 잤다.

아침에 깨어났을 땐 햇살이 상쾌했다.


엄마 또 만나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나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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