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람은 살아야지
#52. 마음을 비우는 연습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유독 엄마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날이 있다. 어젯밤이 그랬다.
새로 이사 온 집이 썩 마음에 든다. 주방도 넓고 바람이 잘 든다. 1층만 나가도 사람들이 벅쩍지근많고 거실에 앉아있다 보면 애들 놀이터에서 와하하 노는 소리도 들린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한 개체구나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층이 낮다 보니 만약에, 만약에 시각을 되돌린다면 엄마가 창문 넘어 떨어졌다 해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만큼 이 집이 좋다.
엄마는 아마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고통이 짧았든 길든 창문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부터 추락하는 몇 초와 그 후의 암전까지 공포 속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발가락 하나 골절한 것으로도 이렇게 걸을 때마다 아픈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그 상상할 수 없을 고통을 상상할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리고 슬프다.
아침에 발가락 골절 정도를 다시 체크하려고 아빠랑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아빠는 우리 부부의 일정을 물었다.
"응, 엄마한테 갔다가 까르 데리고 애견 운동장 가서 좀 뛰게 해줄까 해"
엄마가 일상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한탄이라도 할 심산으로 경모공원에 다녀올까 한다 얘길 했다.
작년 여름이었나. 너네 엄마 잠은 자고 싶은데 잠이 안온 다고 병원에서 준 수면 유도제를 한꺼번에 다 털어 넣었었지 아마. 도대체 왜 그렇게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엄마가 약물 오남용을 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듣는 얘기라 적잖이 놀랐지만 그저 듣고만 있었다. 속으로 사실은 아빠에게 그럴 때 아빤 뭐했냐고, 엄말 때려죽이는 한이 있어도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니었냐고 원망하는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사실 엄마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서 아빠가 말린다고 해도 말려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괜히 얘기했다가 아빠 죄책감만 덧 씌울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산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자꾸 가면 생각만 더 나지. 그러니까 특별한 날 아니면 괜히 자꾸 가고 그러지 마.
내가 방에서 홀로 운다는 사실을 아빠는 안다. 아빠의 슬픔도 깊어서 내 어깨를 토닥이는 대신 방문을 조용히 닫는 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참 현명하고도 서글픈 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죽은 사람을 외면해야 한다. 상처에 내려앉은 딱지가 거슬려도 떼지도 못하고 긁지도 못하고 다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딱지는 아물면 자연히 떨어지고 흉터는 남을지언정 더 이상 아프지는 않다. 상실의 아픔과 애도의 과정도 흉터가 낫는 과정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집에 살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마다 구석구석 엄마가 그 안에 함께했던 자태가 잔상으로 남지 않아 하루를 견디는 것이 이전 집에 살던 때보다는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슬픈 것은 엄마가 함께 있다면 엄마 취향에 딱 맞는 이 집이 엄마의 수명을 몇 년이나마 연장시켜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로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 깨어나서까지 너무나 피로했다.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길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인천 집에 짐을 실어 나른다고 아빠와 남편이 부재한 집안에 흰 커튼이 나부끼고 있었다. 가슴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옆에와 자고 있던 까르를 끌어안았다.
까르, 잘 잤어? 엄마 사랑해? 엄마도 까르 사랑해.
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순간에 나를 끌어안고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잘 자다가 깨어난 까르는 내 얼굴을 핥으며 눈을 끔뻑거렸다. 마치 엄마 사랑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까르를 더 꼭 끌어안았다.
이불을 꼭 덮고 자고 있는 우리집 한살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