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의 전원주택

#53. 죽은 엄마의 이웃사촌(공동묘지 단상)

by 풍선꽃언니

우리 엄마가 쉬고 있는 동화경모공원은 헤이리 예술마을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도심에서 삐죽 빠져나왔을 뿐인데 무척 한적하다


"맨날 인천에서 바다만 보다가 여기도 느낌 있다, 그지"

"응, 미국 어디 온 거 같아"


아빠는 오늘 아침만 해도 엄마한테 너무 자주 가는 게 안 좋다고 했다. 죽은 사람 자꾸 생각나게 왜 자꾸 가냐고. 그런데 막상 가겠다고 준비하니 그 사이에 엄마 납골당 화병에 꽃아 둘 손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아빠가 무심한 듯, 츤데레 스타일이다)

엄마에게 선물할 손 꽃다발들

경모공원에 남편만을 대동해서 온 건 처음이다. 늘 아빠랑 남동생 함께 와서 울지 마라, 하는 통에 끅끅 울음을 참느라 애먹었다. 오늘은 남편만 있어 엄마를 붙들고 마음껏 애도하고 소리 내어 울며 눈물을 흘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

엄마 우리 이사했다. 엄마만 있으면 진짜 완벽한데 엄마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난 진짜 엄마 미워 죽겠다.

납골당 엄마 문을 때리며 실컷 화내고 오열하고 나니 엄마한테 할 말 다한 것 같다.

어머니, 왜 벌써 가셨어요. 아버님이랑 Y(나)가 엄청 힘들어해요. 저도 그리워요 어머님. Y(나)가 그동안 아버님이랑 처남이랑 같이 오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했는데 이제 후련하게 우네요. 얘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어요. 속상해요

남편도 엄마에게 안부인사를 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일 때 엄마가 죽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홀몸이었다면 견디기 너무 외로움이니까. 엄마가 죽었다는 것은.

봄 진달래 닮은 우리 엄마

엄마랑 아빠 나중에 합장하게 여기 자리 알아보자. K(남편) 부모님 자리랑 우리 자리도.

경모공원에 모여있으면 가족들이 서로를 바라보기 좋다는 생각에 남편과 나는 양가 부모님과 우리 두 사람 자리를 미리 정해두자고 예전부터 의견을 맞춰왔다.


나란히 앉아있는 묘지며 납골당이 요즘 유행하는 타운하우스 한 단지처럼 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곳에 엄마의 이웃은 어떤 사람들 일까 둘러봤다. 대부분이 오래전에 태어나 노환으로 가신 분들인 것 같은데 아빠 나이부터 엄마 나이에 이르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예전에 엄마 나이가 아빠랑 터울이 많이 져서 또래 친구들 애들이 이제 취업 준비하거나 대학생이라며 아빠랑 결혼하니 내가 벌써 시집을 가고 아빠가 은퇴를 한다고 잔뜩 흥분해서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부모가 되면 자식들 크는 눈높이에 내 나이가 맞춰지는 법이라고. 가령,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면 초등학생 엄마들과 친구가 되고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 자식 가진 부모 입장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 올해로 만 58 세지만 아빠 나이에 맞게 만 65세의 눈으로 세상을 봤고 두 아이를 결혼시킨 뒤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하던 중에 죽었다.


그러면 이제 남편 자식 다 두고 저승에서의 친구들은 어떤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내가 그리워서 내려다보며 슬플까. 엄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근 2주에 한 번씩은 찾아가니 딸애가 자주 와서 꽃을 가져다준다고 자랑할 친구들을 사귀어 외롭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그래 줄 거지 엄마?)


몽환적일만큼 푸르던 봄의 기억

아름답다. 봄은 참 좋은 계절인데. 엄마가 떠난 초봄은 내게 고통과 번민으로 남겠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그 계절을 벗 삼아 나는 또 내 인생의 새로운 하루를 역사로 쓰겠지.


그 길에 함께할 엄마의 남편인 나의 아빠

그리고 사랑하는 내 남편 K와 까르.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들을 축복해줘. 엄마.


우린 엄마가 살고 있는 새로운 집에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들려주러 갈게.

훗날 우리 모두가 함께할 엄마의 전원주택에.

매거진의 이전글산사람은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