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설레는 사람

기다림의 자리

by HYoung

설렌다는 말은
요즘엔 조금 어색한 단어가 됐다.


좋아한다거나, 설렌다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예쁜 단어들을 쓰는 게
괜히 조금 민망하고 쑥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닌데,

괜히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한 번쯤 속으로 걸러보게 되는 말들.



그래도 나는 아직 설렌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음원이 나오는 날,
보고 싶었던 영화가 개봉하는 날,
내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의 빅매치가 있는 날.


내가 앨범을 발매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경기를 뛰는 것도 아닌데

그날만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다.



설렘은 언제나 크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좋아한 것들 앞에서는
더 작고 조심스러운 감정으로 남아 있다.


팬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던 감정을
쉽게 식히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매번 뜨거울 필요도 없고,
항상 앞줄에 서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좋아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가끔씩 꺼내보며

따뜻함을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설레는 날'을 기다린다.


그건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시간을

설렘이 머물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어주는 일에 가깝다.



앞으로 나서지 않아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평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채우는 감정.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아직 설레는 날을,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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