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리알 장조림
온이는 올해 7살이다. 다섯 살부터 시작된 공주 사랑은 현재까지도 ing.
온이는 방과 후 체육이 있는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늘 드레스나 치마를 입고 유치원에 가길 원한다.
엄마가 골라주는 편한 옷들은 모두 정중히 사양하고 늘 안방 옷장에서 지인들에게 물려받은 백설공주, 라푼젤, 엘사 등의 공주님 드레스를 골라 입고 머리에 왕관까지 쓰고 따라란~하며 거실에 나와 나를 쳐다본다. 아이의 눈에는 "어때? 엄마? 나 공주님 같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나는 유독 우리 딸아이만 이렇게 공주님을 좋아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밴드에 올리시는 유치원 사진을 보면 여자아이들의 삼분의 이 정도는 레이스 치렁치렁한 옷들을 입고 있다. 하하. 그 아이들도 유치원 가기 전 얼마나 설레고 좋아하며 드레스들을 입었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공주님 드레스의 열기가 사그라지는 것을 알기에, 일곱 살이 공주님 왕관과 드레스의 마지막 시기임을 알기에 나는 온이가 드레스를 실컷 입도록 놔둔다.
나는 가만히 온이가 예쁜 표정을 하며 눈을 깜빡이며 공주가 되어 유치원 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바라보며 한없이 딸바보가 되어 버린다.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에게도 많이 가게 되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 바로 아이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고 멋지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와, 애들은 알까? 자기들이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라는 걸? '이라는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가진 순수함과 맑음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요즘은 첫째 택이가 열 살이 되다 보니 십 대 아이들에게도 눈이 가진다. 조금만 지나면 우리 택이도 교복을 입고 커다란 가방에 책을 가득 넣고 학교를 다니게 되겠지.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예전 선생님들이 해 준 말들이 생각났다. "얘들아. 너희는 그냥 그대로가 제일 예뻐. 제발 화장하고 눈썹 그리고 다니지 좀 마. 교복 깔끔하게 입고 다니면 그냥 제일 예쁜 거야."
그 말이 그때는 왜 그렇게 와닿지 않았을까. 지금 보니 정말 교복 입은 아이들은 교복 단정히 입고 머리 빗질만 해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솜털 보송한 아이들의 모습은 그냥 있는 그대로 빛이 난다.
예전에는 왜 그걸 모르고 교복을 줄여 입고 입술에 립글로스 한 번 바르고 머리는 깻잎으로 무스질을 해댔을까. 하하. 그 십 대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이 고스란히 담긴 졸업앨범은 들춰보기가 민망하다.
어느 날 온이가 거울을 보더니 나에게 얘기한다. "엄마, 나보다 다른 애들이 더 예쁘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짐짓 놀랐다. 일곱 살 온이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마음이 살짝 아리기도 했다. 누구와 비교하며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미에 대한 각박한 기준에 어린아이들 또한 그들의 생각을 맡겨 버린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닌 굉장히 왜곡되고 미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화 캐릭터들의 모습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어린아이들의 건강한 자아상을 망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오늘 저녁은 우리 온이가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해줘야지, 멸치 다시마 육수에 메추리알, 다진 소고기, 간장, 설탕, 마늘 조금 넣어 보글보글 끓여 잘 조려내면 완성!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우리 온이에게 특별히 얘기해 주고 싶다.
"온아,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너무 사랑스러워. 꾸미지 않아도,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지단다. 다른 사람과 너희를 비교하지 않아도 돼. 너는 그냥 너로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