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제발 구몬 끊을래

by 그레이스

첫째는 작년 9월 처음 구몬 수학을 시작했다. 대학생 자녀를 둔 이웃 엄마의 조언에 솔깃한 나는 첫째의 의견은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구몬을 신청했다.

이웃 엄마의 말인즉, "내가 본 아이 중에 가장 예의 바르고 잘 자란 애가 있는데 그집 엄마는 애를 중학교때까지 학원에 안보내고 딱 구몬만 시켰어. 그러니까 애가 학원 스트레스도 없고 구몬만 꾸준히 하니까 수학은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중간은 늘 하더라구. 그러니까 택이(첫째)도 구몬은 꼭 시켜 ~"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구몬은 꼭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지나는 기억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 늘 내 책상 가득 학습지가 쌓여있었던 기억이 났다. 맞다. 나도 학습지를 (신청을) 하기는 했었지......

하지만 구몬은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방문하시기에 미루고 싶어도 미루지 못할터이니 나의 상황과는 달랐다.


그리하여 처음 구몬 선생님을 모시고 레벨 테스트를 하고 당연히 가장 기초 수준부터 시작한 우리 택이는 그날부터 구몬의 늪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6장의 연산을 해야하는 택이는 도대체 왜 구몬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매주 오시기에 매일 매일 꾸역꾸역 문제를 풀었다.

어느날은 구몬이 너무 하기 싫다며 울기도 했다.

"엄마, 나는 내가 해야하는 것들 중에 구몬이 제일 싫어. 사는게 힘들어."

아, 이 말을 듣는 나는 정말 당장이라도 구몬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더욱이 그러한 것이 매주 한 번 누군가 집에 방문을 하는 것도 나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선생님의 일정이 생겨서 스케줄을 바꾸면 우리 가족 전체의 스케줄도 조절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수업을 하는 단 십분을 위해서 말이다.


택이의 괴로운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옛다. 구몬 취소.'를 던져주고픈 마음도 늘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계속 갈등이 되었다. 보통 택이는 학원에도 가지 않고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무인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와서는 밤 늦도록 탱자탱자 잘도 논다.

물론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만 그것도 피아노 보다는 친구들 만나러 가는 재미로 가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택이의 삶은 자유롭기 그지 없었는데 갑자기 구몬이 들어와서 그 자유를 앗아가 버린 것이다.

나는 택이에게 자유를 다시 선사할 것인가 구몬이라는 작은 굴레로 택이의 삶에 고난을 허락할 것인가에 대한 무궁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일단 조금 더 해보자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하여 택이는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장장 10개월을 매일 매일 연산 6장을 푸는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구몬 선생님은 3번이 바뀌었다. 하하.


놀라운 점은 택이의 구몬 습관 뿐 아니라 다른 습관들도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택이는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먼저 QT를 혼자서 하고 책가방을 싸고 물병을 챙겨 학교 갈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는 책을 읽거나 테트리스 게임을 하면서 엄마가 일어날 때까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본래 택이는 내가 해라, 해라, 해라 세번을 말하면 네번째 말을 듣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그런 택이를 보면서 사람이 작은 습관 하나를 가지는 것이 다른 습관도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구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계속 구몬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 나도 택이를 보고 자극을 받는다.

말로만 백번하는 운동 습관, 요번에는 꼭 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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