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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옆집 남자



옆집 남자의 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게 된 때는 이사를 오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는 씻을 때마다 고통스럽게 코를 풀어댔다. “킁- 킁- 킁-”. 괴수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괴수가 운다면 아마도 그리 울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소리였다. 적어도 옆집 남자는 비염 하나 정도는 코에 달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집에 왔음을 엄청난 코 푸는 소리로 내게 알려왔다. 그의 코 푸는 소리가 화장실 벽을 타고 넘어 들려올 때마다 나는, 그가 들어왔음을 어림짐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코 푸는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이사를 갔겄나 비염이라는 불치병을 고쳤구나 하고 내심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밤늦은 시간, 외출에 돌아온 옆집 남자는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그 소리가 화장실 벽을 넘어 흘러들어왔을 때, 나는 옆집 남자가 술 한잔 걸걸하게 걸친 줄로만 알았다. 그냥 퇴근해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다 기우인 줄로만 알았다. 



그의 노랫소리는 주기적으로 잊을 만하면 벽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는 심각한 음치였다. 노래 솜씨가 그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불만을 토로하기에는 가끔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채 10분을 넘기지 않고 끝이 난다는 점에서 그냥 감수하기로 했다. 어제는 휘성의 ‘안 되나요’를 그리 열창을 하며 불렀는데, ‘정말 안 된다’고 답해주고 싶었다. 제발. 노래는 제발. 



하지만 나도 그 옆집남자에게 꽤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변기통을 붙잡고 토를 할 때마다, 괴상한 괴음을 쏟아내는 나인데, 그 역시도 들었을지도 모를 일 아니던가. “옆집 여자는 미친 여자가 아닌가” 하고 섬뜩해 하지 않았겠는가. 제발 그가 듣지 못했기를 바라며…. 



요즘 세상에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채 산다. 나는 옆집과 앞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다. 내 옆집에는 밤마다 노래를 부르는 남자가 산다. 언젠가 내가 아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다음에는 화음으로 답해줘야지. 옆집에도 만만치 않은 미친 여자가 살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그의 흥겨운 노랫소리는 내게 그다지 흔쾌한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코푸는 소리보다 노래 부르는 소리가 차라리 좀 더 크게 들리면 좋겠다. 그냥 옆집 남자도 나도 이 건물에 사는 동안, 화장실에서 아픈 일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 나는 만취해 토하는 일이 줄었다. 그보다는 내가 좀 더 예의 있는 이웃주민인 셈이다. 



그의 목청에 안녕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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