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락을 끊은 지 꽤 오래된 L게서 연락이 왔다. L은 내가 오래전에 절교한 친구 덕분에 알게 된, 한 살 많은 오빠이자 게이인 친구였다. 그 친구와 절교를 하며 L과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는데, 그런 L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문맥을 파악했을 때, 그는 나에게 답장을 바라고 문자를 보낸 건 아니었다. 그저 그 계절 잘 보내라는 안부 인사 정도. 여전히 나를 생각해준다는 사실에 조금 깜짝 놀랐고, L 역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직도 사랑을 찾아 상처받고 있는지 궁금했고, 지금도 정의로운지 궁금했다. 답장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했고, 결국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
L 은 그 시절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잘생긴 친구이자, 리버 피닉스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 시절 L은 나에게 “예쁜 시쥬”라고 불러주며 나를 예뻐해 주었고 응원해주었고 아껴주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친구의 아픔을 같이 나눴고, 말도 안 되는 문예지를 함께 만들어 배포했으며, 떡볶이를 나눠 먹었다. 한 통에 만 원 정도 하는 기름을 사다 난로에 불을 지피었고, 아껴 쓴다고 공간에 온기가 더해지면 난로를 끄고 켜고를 반복했다. 방안에서조차도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그 겨울, 우리는 낡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며 밤새 수다를 떨었고 허망한 꿈을 이야기했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꿈꾸고 말도 안 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 시절에는 나도 몽상가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던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이미 시간은 5년 이상이 흘렀고, 그 공백 동안 L도 나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 시절과 다르게 변한 내 모습에 L이 실망할까 겁이 났고, 나는 여전히 L의 "예쁜 시쥬"로 남고 싶었고, 서로의 여백을 채워줄 공감될 만한 이야기가 없을까 무서웠다. 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되었고, 투쟁보다는 상생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답장을 안 한 것이다.
⠀
함께 경험했던 슬픔의 시간이 매년 어김없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여전히 L 과 그 친구를 기억한다. 많은 사람이 내 삶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끊겨 나갔다. 그중에는 이름과 얼굴조차 까마득한 사람이 대개이지만, L은 여전히 내게 궁금한 사람이다. 미처 답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말해주고 싶다. 나는 여전히 잘 못 지내면서도 잘 지내고 있다고. 나와 네가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었다면 내 삶의 결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지 궁금하다고. 나는 그때보다 눈물이 많아졌고, 그 시절보다 용기가 더 없어졌다고.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 만큼 나도 너를 걱정하고 있다고. 늘 궁금하고 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