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 씨랑 마시면 술이 너무 맛있어요”라는 꼬임에 넘어가 술에 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와 술친구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막내 에디터 시절부터 고참 에디터가 되기까지. 그는 6년간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열 살 많은 직장동료이다.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실 만큼 친해지게 된 건, 딱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회사 욕과 만취할 수밖에 없는 풍경들.
업무 특성상 무수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지리산에서 주왕산으로, 대청도에서 제주도로. 거의 전국구로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을 인터뷰하고 산을 넘고 수십억 년 전에 생성된 암반을 찾아다녔다. 그렇기에 우리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항상 놓여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술잔을 기울인 날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더웠으며 지리산을 탔으며 숨이 턱 밑까지 차 있었다. 물보다 맥주가 간절했고, 하산 후 바로 삼겹살집으로 달려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비워지는 술병의 개수만큼 우리의 친밀도는 높아졌다. 그 이후 먼 곳으로 출장을 다닐 때마다 우리는 줄곧 술을 마셨다. 대청도에서 맛본 숙성홍어회는 잊지 못하리만큼 충격적인 맛이었고, 그날 마신 소맥의 달큼함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퇴사했다. 동료로서의 마지막 인사도 당연 술로 했다. 막걸리를 마셨고 “회사가 아니라도 곧 봅시다”라는 인사와 함께 작별을 했다. “곧 봅시다”라는 말이 빈말이 되지 않은 건, 체감 일 년은 걸쳐 한 듯한 퇴사 기념 파티 때문이었다.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까지도 나는 저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와 간간히 술을 마시게 됐다. 안주보다는 술에 근거한 술자리가 대체적이기 때문에, 안주를 찾아 마시기보다 술을 찾아 술을 마셨다. 술만 있다면 그곳이 우리가 취해야 할 곳, 취해야 할 이유였다.
처음에는 퇴사한 회사가 우리의 주된 안주거리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면 술친구는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술자리의 주제는 회사 욕으로 시작하여 최근 근황, 주요 관심사, 음악, 꿈, 죽음, 작업물 등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대화가 가능한 것은 술자리라는 분위기가 주는 어떤 가벼움, 취한 상태인 알딸딸한 기분이 내어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잔을 부딪치는 호흡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서로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으며, 주식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보유한 자산을 말하지 않으며, 잘난 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열 살이 더 많다고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무르익어가고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여 한껏 만취 상태에 도달한다. 그리고는 “2차 가야지”라는 어떤 질척거림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되돌아간다.
진정한 술친구란 무엇일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과 ‘없음’에서부터 판가름 난다. 사실 그와 술을 마신 후 제정신으로 집에 들어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나의 마지막은 블랙아웃 상태. 그래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그에게 지껄였는지, 그다음 날에는 후회조차 할 수 없다. 나의 만취 상황을 다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술 한잔 해야죠”하며 또다시 술 약속을 청하는 그의 문자는, 비로소 술친구라는 타이틀을 얻게 해준다. 그날의 만취는 그날의 술잔에 게워버리고, 또 다른 날의 만취를 위해 여운을 남기고 적당한 선에서 술자리를 끝마치는 탁월함과 적정함. 그와 오고 갔던 대화는 비록 소맥과 함께 저 멀리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술친구는 생각보다 꽤 오래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