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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용돈



“절약시대” 그녀는 내게 용돈을 받고 나면 줄곧 이렇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절약을 해야 하는 걸까, 버는 만큼 쓰면 안 되는 걸까, 맛있고 비싼 음식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비싼 옷과 신발은 사치일까. 절약시대를 외치는 그녀가 이해되면서도, 그런 그녀가 또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했다. 뷔페에서, 고깃집에서, 중국집에서, 분식집에서, 칼국수집에서. 아침 아홉 시에 나가 밤 열 시에 돌아왔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지독하리만큼 몸속 깊은 곳에서까지 식당 냄새가 풍겼다. 때로는 그 냄새가 역하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몸에 배긴 냄새야 씻고 나면 사라진다지만, 옷에 배긴 냄새는 빨아도 빨아도 그 흔적을 감추지 못했다. 삶에 찌든 냄새가 녹록지 않은 그녀의 인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녀는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매일 밤 몸을 닦으며, 그 옷을 일일이 손빨래를 했다. 그녀에게 나는 냄새는 비단 식당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일 밤 관절이란 관절에 맨소래담을 잔뜩 바르고 잤다. 온 방에서는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파스를 바르고 잔 다음 날에는 그녀의 삶의 피로가 말갛게 씻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또 생활을 위해 식당에 나갔다. 그 시절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서빙하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해서 벌어온 돈으로 그녀는 나를 키웠다. 백오십만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지금과 그 시절을 비교해 본다면, 백오십만원이란 돈은 얼마 정도로 환산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백오십만원은 적은 돈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돈으로 나는 한 달에 이십 오만 원이나 하는 수학 과외를 받았고, 국영수 보충학원을 다녔으며, 그 시절 최신 핸드폰을 가졌고, 점심과 저녁 급식을 챙겨 먹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대학 때는 한 달에 용돈 30만원을 받아서 생활 했다. 그렇게 나에게 해줄 것을 다 해 주고 난 뒤에 남은 돈으로, 그녀는 생활을 꾸리고 또 저금을 했다. 그녀의 이 지독한 생활력 덕분에, 내가 지금의 나로 살아간다.


그렇게 젊은 시절 식당에서 일한 그녀는, 내가 대학생일 때 암에 걸렸다. 위의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추적 검사 오년을 거친 후, 지금은 완벽하게 완쾌하여 완치 판정을 받았다. 배 절반에 남은 칼자국은 마치 훈장처럼 그녀의 몸에 오롯이 남았다. 그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식당에 나가지 않는다. 식당에 나가지 않은 뒤로부터 그녀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지만, 내 걱정은 한 움큼 덜었다.


그 시절 그녀가 내게 준 용돈에 비하면, 나는 턱 없이 부족한 돈을 그녀에게 용돈이랍시고 건네고는 한다. 그 돈마저도 “더 적게 넣어야 하나”, 매번 액수를 세며 고민을 하고는 한다. 그런 고민이 담긴 용돈인지도 모르는 채 그녀는 늘 내게 감사 인사를 한다. “너도 힘들 텐데, 너 쓰지. 고마워, 잘 쓸께.” 돈은 그때의 그녀보다 넉넉하게 벌고는 있지만, 마음은 그때의 그녀보다 턱없이 작다. 버티고 감내하면서도 마음을 크게 쓸 줄 알았던 그녀, 내가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다. 어쩌면 그 간극은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삶은 비록 고단했지만 마음만큼은 부유했던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좀 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니고, 이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버티는 삶을 살았다. 그 시절 그녀의 인생의 가치는 어디를 향해 있었을까.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버티며 살아왔을까. 그 답은 알고 있지만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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