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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이상한 사람

  



토요일마다 그녀와 나는 만난다. 암묵적인 룰이 된 지도 이미 오래. 그녀를 만나지 않은 토요일은 시원섭섭하기까지 하다. 그러하니 일주일 중 단 하루, 토요일만은 그녀를 위해 비워둬야 한다. 그녀는 일곱 살 먹은 내 친구 김민서다.      


그녀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만날 때마다 놀라움을 선사하는 그녀의 성장 때문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까지 고작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녀는 알게 모르게 키도 마음도 쑥쑥 성장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자잘한 그녀의 성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순간은 대뜸 찾아온다. 

    

어느 날은 내게 ‘헤어지기 아쉽다’라는 말을 하며 울며불며 떼를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게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준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혼자 돈을 버는 일은 힘든 일이니 결혼을 해서 그 어려움을 남자와 반으로 나누라 충고하기도 한다. 낯선 어린이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빌려줄 줄도 알고, 상처에 대일밴드를 붙여줄 줄도 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의 성장이 눈물 나게 경이롭다. 그 변화의 기점은 아마도 뜨문뜨문 드문드문 말문이 틔기이기 작했을 때쯤이리라. 가족의 품 안에서 놀이터로, 어린이집에서 태권도장으로, 행동반경의 폭이 넓어지면서이리라. 그렇게 그녀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녀와 나누는 우정이 즐거운 이유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3kg로도 채 안 되어 태어난 그녀가 씩씩하게 뛰어다니고, 할머니는 착한 사람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라며 이분법적 논리로 사고하고, 해괴망측한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며, 마인크래프트 게임으로 펜트하우스를 짓고, 일본을 무찌른 각시탈 오빠와 결혼하고 싶기보다 본인이 각시탈 오빠가 되고 싶어 하며, 아무에게나 가서 “야, 너 나랑 놀래?”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그녀가 평범한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으로 자라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고는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1%의 또라이가 아니던가.     


아무쪼록 나는 김민서 어린이가 아주 이상한 친구로 자라나면 좋겠다. 그렇기에 김민서 어린이가 아주 뻔뻔하면 좋겠다. 실패해도 태연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술 취해 미끄럼틀에 누워 잠든 이모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 이모예요’라고 말할 줄 아는 창피를 무릅쓰는 어린이면 좋겠다. 행운의 편지의 무게감을 아는 순수한 어린이면 좋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멩이를 보고 다이아몬드라고 상상하는 어린이면 좋겠다.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는 용기 있는 어린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모라는 존재에 앞서, 인생 최초로 우정을 나눈 ‘친구’라 기억되고 싶다. 사기를 잘 치는 나이 많은 친구, 유머 좀 할 줄 아는 친구, 쫄바지 입은 김민서를 극혐하는 패션 좀 따지는 친구, 발을 잡고 거꾸로 들어 새울 수 있는 힘센 친구, 목청이 커서 가끔은 창피한 친구, 술 취해서 아무 데서나 잠자는 친구. 하여간 여러 모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이상한 친구로 기억되면 좋겠다.      


또 한 번의 토요일이 온다. 어김없이 나는 그녀에게 약속을 청한다.      


“야, 김민서! 너 나랑 놀래?” 

“응”      


그녀의 답은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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