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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내가 자초한 강제 의무



요가는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내 의무였다. 요가라도 해야 퇴근 이후의 움직임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약해지는 마음을 운동으로 다스리고 싶기도 했다. ‘강인한 신체 안에서 강인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리하여 나는 매주 주 3회 ‘가기 싫은 마음’과 ‘술 먹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요가원에 나를 강제로 집어넣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압박감을 주면서도, 무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움을 준다. 그렇게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요가원에 간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연속된 동작은 내 몸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직면하게 해준다. 몸을 최대한 앞으로 구부려야 하는 ‘파스치모타나사나(전굴 자세)’는 내가 가장 잘하는 동작이다. 한 발로 지탱하고 서 있어야 하는 ‘웃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는 할 때마다 어렵고 할 때마다 쓰러진다. 그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여러 아사나를 거치고 나면, 마침내 최고의 동작에 이르게 된다. 이 동작을 위해 한 시간을 버텨온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직된 몸을 풀어주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송장처럼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자세 ‘사바아사나’, 극강의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내가 자초한 강제 의무를 “해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맥주 한 캔을 산다. 길거리에서 시원하게 들이키는 ‘그 한 모금’.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에 달라붙은 요가복에서 탈출을 하고 곧장 샤워를 한다. 몸 구석구석에서 흘러내린 땀을 헹구는 ‘그 개운함’.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카타르시스다. 이 맛에 또 요가를 하러 간다.      

그렇다면 나는 요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가. 일 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아마도 지금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요가원 바깥에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애써 노력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 년 후의 내 모습은 여전히 뻣뻣할 것이며, 내 무게를 딛지 못해 점프쓰루와 점프백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뭐 내가 무엇이 되려고 요가를 하나.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요가를 하지. 그래서 나는 요가가 좋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로 시작했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툭 놓인다. 머리서기에서 늘 실패하는 내게 “희주님 잘하셨어요. 내일 또 하면 돼요. 언젠가는 되겠죠.”라며 실패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현재의 내 자신을 딛고 일어서게 해주는 따스한 선생님이 있어서 좋다. 도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동작을 실패해도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위로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좋다. 힘든 이유가 다 잘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좋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는 하는데, 실망감보다는 언젠가는 잘하리라는 ‘확신에 찬’ 눈빛을 내게 보내줘서 좋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실이 좋다.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다. 언젠가는 끝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좋다.      


그래도 언젠가는 머리서기에 꼭 성공하리라. 무엇을 하긴 해야 해서 하긴 하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만 다 하면 되니까. 뭐, 아무렴.    

  

이렇게 내가 자초한 강제 의무는 목적 없이 유유히 인생의 리듬에 맞춰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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