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스무 개 정도를 보고 난 후, 지금의 집을 선택했다. 아니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선택해주었다. 서른네 살의 일이었다.
집을 구할 때 세운 조건은 단 두 가지였다. 거실이 있을 것, 거실에 큰 창문이 있을 것. 많은 집이 있지만 많은 집이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집을 많이도 봤다. 고깃집 2층에 있던 어떤 집은 손님용 화장실이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위치와 옵션 등이 좋았던 어떤 집은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조건이 나쁜 집만 본 건 아니었다. 전망 좋은 아파트는 내가 넘보지 못할 산이었다. 수중에 내가 쥔 여윳돈, 전세대출과 그 이자, 아파트 관리비…, 빠른 포기는 추진력을 준다.
그런 상황에 마침내 나의 취향을 간파한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과 첫 번째로 보러 간 집은 내가 선택한 집이었다. 첫 입주에, 전세금 8천만 원짜리 집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간 거긴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때였다. “고객님이 좋아할 것 같은 집이 있어요. 거실도 있고 창도 커요. 그쪽으로 한번 가보시죠.” 반신반의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마음으로, 위치도 물어보지 않은 채 그를 따라나섰다. 신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집이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 집을 계약했다.
‘손 없는 날’에 맞춰 이사하지 못했지만, 몸만은 손 없는 날에 맞춰 들어갔다. 자정이 넘어간 시간, 부모님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이 집으로 왔다. 그날 밤이 생각난다. 침대에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내질러댔던 기쁨의 환호성이, 새로 산 이불의 감촉이, 따스했던 노란 빛의 조명이. 내가 기억하는 이 집에서의 첫날밤이다.
그렇게 서른네 살에 첫 독립생활에 들어갔다. 독립생활은 대체로 좋은 일들로 점철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귀찮은 일도 넘쳐났다. 수건 빨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해야 부족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고,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은 해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화장실은 물 마를 새 없이 물때가 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선택한 책임감들이.
평소에 무지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간편식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 발효식품인 김치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달걀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나는 설거지를 싫어한다는 것, 대신에 빨래와 널기와 게기를 좋아한다는 것, 맛있는 소고기도 맛없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는 것.
독립생활이 주는 좌절도 수시로 맛보았다. 무엇보다 세탁기, 보일러, 변기처럼 내 일상에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자주 고장이 나 나를 애먹였다. 그럴 때마다 낡은 집과 낡은 옵션을 원망하기보다, 여태껏 불편함 없이 살게 해 주었던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함을 느꼈다. 내 많은 일상에 숨은 보살핌이 있었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까지 ‘더러운 꼴’ 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일상이 너무나도 당연해, 오래도록 감사함을 잊고 살아왔다.
나는 이 집에서 그 누군가가 아닌,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 놓인 모든 불편함과 직면했다. 세탁기가 작동되지 않는 원인도 여러 개, 변기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원인도 여러 개. 하나의 기계가 품고 있는 고장은 도대체 몇 개란 말인가. 고장 난 기계를 마주하면 기계가 주는 ‘편안함’과 고장 난 상태가 주는 ‘두려움’을 함께 맞닥뜨렸다. “집주인에게 말해야 하나, 내년에 전세계약 안 해주면 어떡하나,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어쩌나”, 결국 집 없는 설움이 나를 맥가이버로 만들었다. 두려움이 원동력이 된 셈이다. 다행히도 기계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렵지 않은 문제들이었고, 아주 다행히도 그것들은 부품 교체만으로 큰돈 들이지 않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밥 짓는 손재주는 없었지만, 다행히 고치는 손재주가 있었다. 고장이 잦을수록 집에는 그에 따른 장비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렇게 삶의 지혜가 쌓여갔다.
독립을 한 지 이제 1년 6개월이 됐다. 고작 1년 6개월이지만, 독립은 내게 혼자 사는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려줬다. 모든 일에는 혼자만의 책임감이 뒤따르고, 그 결과는 나 혼자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독립 후 모든 일에는 ‘혼자’ ‘홀로’라는 전제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나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채우는 과정을 가졌다. 나는 그간 주어지지 않았던 ‘혼자’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있다. 언젠가 그것들이 연륜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독립은 내게 혼자 사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