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애는 삼 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이별을 고한 건 그 사람이었다. 침묵도 답이었다고 한다면, 차가웠던 그 날 오후 10시의 풍경과 아무런 답이 없던 상대방의 굳게 닫힌 입술은, 내게 대신 답을 해주고 있었다. 단지 나는 연애의 끝을 믿지 못하고 있었고, 다만 나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 대해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뿐이었다.
이별한 후에도 오래도록 굳은 믿음을 갖게 해주었던 건, 그가 이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게 보여주었던 따듯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그를 잊지 못했고, 자주 울었으며, 줄곧 그를 그리워했다. 말도 안 되는 점성술을 보러 다녔고 유튜브 연애채널을 보며,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우리가 다시 만날 날에 대해 점 쳐보고는 했다.
신해철은 어른의 연애란 ‘상대방이 힘들 때 같이 힘들어해 주는 것’이라 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장염이 걸렸을 때 나도 같이 장염에 걸릴 정도로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책망했다. 직장일로 힘들다고 하던 그 사람을 내가 보듬어 주지 못했음을, 그 사람이 걱정하던 일을 같이 걱정하지 못했음을, 힘듦을 털어놓지도 못할 만큼 내가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이런 생각을 고쳐먹은 건 그의 새로운 연애 사실을 알게 됐을 때다. 나와 사내연애를 했던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와 사내연애를 한다고 했다. 전후 시점이야 알 바 아니었지만,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날 이후 그에 대한 미련과 흔적을 모두 털어버렸다. 내 자신을 책망만했던 착한 나를 그날 이후로 철회시켰다.
신해철은 그랬다.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는 일은 ‘호흡을 함께’ 맞춰가는 일이라고. 그렇기에 모든 것들은 ‘호흡의 문제’라고. 우리의 호흡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좀 더 빠른 사람과 좀 더 느린 사람만 있었을 뿐, 더 좋았던 사람과 더 나빴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긴 한숨을 내뱉은 이후의 내 삶은 그 사람과 만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6년 만에 이직을 했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스펙트럼이 확장됐다. 물론 쉬지 않고 절교도 했다. 그리고 또 이직을 했다. 내가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고, 나는 그가 아닌 내 삶에 맞춰진 호흡을 이어갔다. 세상에는 들어야 할 음악, 읽어야 할 책, 봐야 할 영화, 알아가야 할 사람, 마셔야 할 술이 넘쳐났다. 요가는 계속해서 다음 동작을 위해 수련을 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치사한 클라이언트를 마주해야 하며, 언젠가는 출판될 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며 글을 써야 한다.
지난 과거를 들추는 일은 쉰내 나는 일이다. 마를 눈물도 없고, 술상 안주로도 이젠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별이 나를 성장케 했다고, 그냥 그저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해철의 이야기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호흡은 맞춰 나가는 일인 건지, 같은 호흡을 하기 때문에 맞춰진 건지. 어쨌든 내 호흡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담대해지고 싶다. 이별과 이별하지 못했던 나도 이제 추억이 되었다. 이번 이별은 이렇게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