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은 아니다. 두려운 일을 직면하는 일은.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돌고 돌아 어차피 맞닥뜨릴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이다. 빨리 직면할수록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고, 늦게 직면할수록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너무나도 뻔한 진리. 그렇기에,
‘차라리 빨리 얻어터지는 편이 낫다’
이렇게 마음먹을 수 있게 된 계기는 지난겨울 모 클라이언트에게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냐”라며 막말을 듣고 난 후, 와인 두 병에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을 때, 누군가의 따스한 구원의 손길로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던 한심함 덕분이다. 그날 밤 내내 나는 변기를 붙들고 있었고, 그다음 날까지도 위액을 쏟아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와인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멍청하게 죽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다윈상이 멍청하게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사람에게도 주어진다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잠자고 있었던 비 오는 어느 1월의 나에게도 영광이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데는 멍청한 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을 직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경력이 나이테처럼 한 해 한 해 늘어난다고 한들, 어려운 일은 계속 어렵고 쉬운 일은 계속 쉽다. 하고 싶은 일은 즐겁지만 하기 싫은 일은 그냥 이유도 없이 싫다. 모든 걸 표준평준화 하여 잘 해야 하는데 사실 참 어렵다. 지금도 어려운 일은 뒤로 미루는 편이다. 그러다 전전긍긍하다 쫄아 붙은 마음을 부여잡고, 해결하려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일도 있고, 역시나 어렵게 풀리는 일도 있다.
허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얻어낸 결론은, 역시나 ‘빨리 얻어터지는 것이 해결책을 빨리 제시해준다’. 그냥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려운 일을 직면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말의 사건들은 결국 나를 썩게 만든다. 결국 나를 갉아 먹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두려운 일을 직면하기로 마음먹자고 그날부터 생각했다. 결국 두려운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어차피 욕은 먹고, 하지만 그럼에도 끝은 난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날 이후 나는 괜찮은 습관도 하나 생겼다. 업무적으로 속상한 일이 생겨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인 두 병의 만취가 내게 일러준 크나큰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