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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20. 2021

좁밥 중의 최고의 좁밥



인생이란 내가 좁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팔로우 하고 있던 수천 여명에 달하는 팔로우들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삭제했다. 그들을 팔로우 할 당시, 나는 그들이 내게 ‘영감’을 주리라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었고,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유하고 있었다. 세계가 나누어진 듯 불안해졌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게 영감을 주기보다 지갑을 열게 하였고, 나의 상상력을 높여주기보다 지갑이 가벼워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옷만 많은 거지가 되었고, 그들은 돈도 많고 옷도 많은 부자가 되었다. 나이는 들고 통장잔고는 비고,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삭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팔로잉 하는 이들은 300여 명에 달한다. 물론 이 안에는 나의 지인도 있다. 하지만 지인보다 더 많은 수가 모르는 이들이다. 이름 나이 사는 곳 직업 등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대체적으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팔로잉 하는, 궁금해 마지않는 이들. 0.0000001%의 영감과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굼벵이 기어가듯 쫒아갈 수 있는 유행을 알려주는 이들이다.


여전히 인스타에는 멋있고 잘났고 행복한 수많은 사람이 살아 존재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삶이 내게 노출된다. 나는 그렇게 간접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덜 멋지고 더 찌질하고 매우 가난하고 더럽게 멋없음을 확인 받는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이 이어지고 내 세상이 확장된다. 그래서 나는 매순간 내게로 이어지는 다른 차원의 삶을 인정하고, 나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애쓰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애쓰는 편'이라고 말하는 게 속이 더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순간순간 애써 인정하고 있다. 세상에 수많은 잘난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세상에 수많은 찌질이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수많은 좁밥 중에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좁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기인하는 열등감을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가랑이 찢어질 듯 따라가지 않고, 가랑이를 좁혀 덜 아플 방법을 찾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보통의 사람보다 머리통이 큰 사람, 손과 발과 다리가 짧은 사람, 심증적으로 ADHD가 있는 사람, 질투가 많은 사람, 나날이 술과 야식으로 살 찌우는 사람, 게으름으로 해야 할 일을 매일 미루는 사람, 사실 매일같이 황새를 쫒기 위해 애쓰는 사람, 지금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사람, 노후가 대비 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인정은 나를 매순간 최고의 좁밥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좁밥 중의 최고 좁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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