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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20. 2021

구원의 힘, 덕질



덕질의 목적은 단지 단순히 맹목적으로 열렬히 '좋아함'에 방점을 찍는 일이다. 덕질은 기존 덕질의 경험으로부터 쌓아올린 가치관에, 또 다른 덕질의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덮어, 새로운 세상을 탄생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무엇보다 덕질은 어느 순간 불현듯, 별안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을 종종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덕질 하는 덕후만이 누릴 수 있는 매우 짜릿한 기분인데, 그 기분이 덕질 할 맛을 준다.    

  

1박 2일의 유호진 PD는 ‘연애란 한 사람의 삶이 통째로 들어오는 일’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사소한 취향 따위까지도 그와 함께 온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좋아하는 '덕질' 역시 비슷한 유형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교 불가능한 감정의 노동이지만, 덕질을 할 때마다 대상이 가진 가치관과 삶과 나약함과 따스함과 사랑스러움 등이 그와 함께 온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 노동은 귀감과 영감을 얻는 특별한 행위이기 때문에, 우습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나는 그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는 대개 진보적이고 모험을 찾고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대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오고, 시야가 확장된다. 또한 이러한 일은 고요한 수면 상태인 나에게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파동을 일으키는 것과도 같다. 그러한 요동은 내 마음속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가 불현듯 이따금 새싹처럼 발현된다.     


어쨌든 덕후로서의 활동은 나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묘약이자 죽은 나뭇가지위에 싹을 틔우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일이다. 삶의 결이 단순히 집과 회사와 술로 점철된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자 경험하는 일이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지독하게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대상의 취향과 삶이 고스란히 내게 점철되는 일이다. 대체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모티브 삼아 내 삶에 대입하는 일이다.


가끔은 히피펌으로 자유를 갈망하고, 클래식을 들으며 우아한 척 고상한 척 주접을 떨고, 가치관이 담긴 글과 노래를 들으며 주책맞게 울기도 하며, ‘인생은 보너스 게임이다!’ 생각하며 인생에 큰 목적을 두지 않으려 하며, ‘인간은 술이다!’ 하며 월요일부터 술을 찾는 변변찮은 어른의 일을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상이 주는 영향력은 일 년이고 이 년이고 혹은 더 몇 십 년이고, 문득 영감과 귀감이 되어 새싹처럼 내 안에서 솟아날 것이다. 이것은 덕후의 대상이 내게 주는 구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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