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독한 술꾼이었다. 동네에서도 친인척까지도 알아주는 최고의 술꾼. 여기에서 말하는 술꾼이란, 적정하게 알딸딸한 상태로의 만취를 즐겨하는 술꾼이 아니라 끝장에 끝장을 매일같이 보는 술꾼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알콜중독과 알콜중독이 아닌 그 경계의 사이에서, 아슬아슬 하게 줄다리기 하는 단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곧바로 알콜중독 행으로 가는 그 길목에 서 있는.
술꾼이 언제부터 술꾼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릴 적부터 시작한 고단한 노동이 그를 술꾼으로 만들었음에는 틀림없다. 고된 노동 끝에 마시는 술은 술꾼에게 최고의 명약이요, 최후의 특효약이었다. 그렇게 취해 들어온 술꾼이 곱게 잠들면 모두가 해피엔딩이었겠지만 술꾼의 주사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화분을 부수기도 했으며, 혼자 밥을 먹게 했다며 찌개그릇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잠들기 일쑤였고, 샤워를 하다 넘어져 타일을 깨 부신 적도 있다. 웬만한 술주정은 모두 다 행한 술꾼이었지만, 다행히도 손찌검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술주정은 술꾼의 마음이 풀려야, 혹은 술꾼이 지쳐 나가 떨어져야 끝이 났다. 식탁에 엎드리고 자는 일은 능사, 그렇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잠이 든 술꾼을 확인하고 나서야 술꾼과의 전쟁은 종료됐다.
신기하게도 술꾼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작업화를 신은 후 또 다시 험난한 일터의 세계로 향했다. 그것이 어쩌면 술꾼인 그를 미워하면서 미워하지 않는, 이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술주정은 지독했으며 많은 이를 괴롭혔으며 도망치고 싶은 이유였다.
술꾼의 부인은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귀신은 뭐하나.”
술꾼이 생애에서 술을 잠시나마 끊은 적이 있다. 복막염으로 수술했던 그 해와 신장염으로 약을 복용하던 때였다. 신기하게도 술꾼은 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술 취한 사람과 있으면 술이 먹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그는 잘 버텨냈다.
하지만 술꾼의 금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술한 자리가 잘 아물고 난 후 그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신장염으로 가슴팍 부근에 구멍을 뚫는 고통을 겪고, 인공호흡기를 단 괴로움을 겪고도 술을 잊어야 하는 고통은 견딜 수가 없었나보다.
다시 술잔을 들게 된 술꾼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술을 안 마실 수가 없다.”
몸이 아픈 고통은 인생의 쓴 맛 앞에서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술꾼의 체력은 점점 약해져만 가고, 술꾼의 몸뚱이는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달라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술꾼이 술에 의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술꾼은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고 현장으로 일을 하러 간다. 그렇게 몸을 쓰는 일에 몸을 갈아 넣은 술꾼은, 하루의 고단함을 지우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며 구석구석 아픈 곳을 달랜다.
술꾼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사회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몸소 경험하고 나서부터이다. 위로 받기보다 삭히는 걸, 울분을 토하기보다 참아야 하는 걸, 포기하기보다 지속해야 한다는 걸.
그리하여 삶에는 인생의 쓴 맛과 술의 단 맛이 함께 존재하는가보다.
불행인 듯 안타깝게도 나에게도 술꾼의 피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