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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띠기 아줌마



오징어게임으로 ‘달고나’가 흥행을 하고 달고나 ‘장인’이 줄곧 매체에 소개되는 것을 보며, 나는 갈마초등학교 앞에서 띠기를 만들던 띠기 아줌마를 떠올렸다. 50원으로  사탕을 만들어주고, 100원으로는 띠기를 만들어주었으며, 200원으로는 띠기 빵을 만들어주던 그 띠기 아줌마를. 띠기 장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유튜브에 공개되고 있지만, 내게는 초등학교 앞에서 연탄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간혹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등으로 추켜올리며 띠기를 만들어주던 띠기 아줌마가 영원히 넘버원 띠기 장인이다.


띠기 아줌마는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계신다. 나를 언제나 초등학교 그 시절의 어린이로 기억하면서. 아줌마의 시간이 몇 년 전에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네가 희주냐? 네가 이제 몇 살이냐?”


교통사고가 난 후 건강이 나빠진 띠기 아줌마의 시간은 언젠가부터 멈춰 늘 같은 시간을 맴돌았다. 그래서 띠기 아줌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고는 했다. 


어제 만나도 “네가 희주냐?” 

오늘 만나도 “네가 희주냐?” 

그 다음 날에 만나도 “네가 희주냐?”

띠기 아줌마의 질문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녀의 시간은 언제나 늘 내가 띠기를 하러 가던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이미 아줌마가 어떤 사고를 당했고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는지는, 어른들의 귀띔으로 알고 있는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아줌마가 나를 만날 때마다 하는 똑같은 질문에, 마치 처음 듣는 질문인 것처럼 답해주고는 했다. 


“네, 제가 희주예요. 네, 이제 대학생이에요.”

“네, 제가 희주예요. 네, 이제 대학교 졸업했어요.”

“네, 제가 희주예요. 네, 이제 회사에 다녀요.”


띠기 아줌마 역시 그런 내 대답에 늘 한결같은 답을 했다. “아이고- 벌써 희주 네가 그렇게 됐냐. 이제 다 컸네.” 대개 동네 어른들과의 대화가 그러듯, 띠기 아줌마와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네, 그럼 가볼게요.” 


때로는 같은 질문을 하는 그녀가, 또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 그녀를 피해 길을 돌아가고는 했다. 혹여나 띠기 아줌마가 나를 알은체 할까봐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잰걸음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좀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그랬던 띠기 아줌마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네가 희주냐, 희주야 우리 아저씨가 아파서 돌아가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멈춘 그녀에게도 죽음은 잊히지 못하리만큼 굵직한 사건이었겠지. 아마도 띠기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달고나가 유행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띠기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세한 서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이 끝나고 난 뒤 띠기 아줌마에게 달려갔던 어린 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띠기를 잘라내던 기억을 조각해냈다. 100원이 주던 행복을, 100원과 200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맛의 차이를. 연탄불 위에서 설탕이 가득 담긴 국자를 들고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녹이고 절묘한 타이밍에 소다 찔끔을 넣어 부풀어 오르게 한 뒤 그것을 쇠철판에 툭- 털어내어,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을 만들어주던 띠기 아줌마를. 


주변의 어른들이 한 명씩 떠나가고 계신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의 추억 한편 역시 소멸되는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이 천천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띠기 아줌마와 자주 마주칠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가끔 들리고는 한다. 그때마다 아줌마를 마주치면 좋겠다. 띠기 아줌마의 시간이 멈추었듯, 그녀의 건강 역시 늘 그대로여서, 내게 또 같은 질문을 해주면 좋겠다. 그때는 “네, 제가 희주예요”라는 답변 말고도, 다른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다. 그 시절의 나를, 그 시절의 띠기 아줌마를, 그 시절의 우리를. 선영이를 영국이를 지영이를 미라를 선아를. 


언젠가는 띠기 아줌마를 붙들고 있는 후유증이 씻긴 듯 말끔하게 사라져,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너 저번보다 더 살찐 것 같다. 결혼은 안 하니?”


만약 진짜로 그런 날이 온다면, 띠기 아줌마에게는 유일하게 그 질문을 허락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의 추억은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 값비싼 기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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