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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Oct 19. 2021

시인 박남준



전 재산이 500만 원인 사람이 있다. 돈을 많이 벌 때도 돈을 적게 벌 때도 그의 통장은 늘  5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의 말에 따르면 ‘관 값’이다. 지리산 시인 박남준의 이야기다.


그를 만난 건 몇 해 전 산을 주제로 한 매거진을 만들 때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하동의 어느 작은 마을로 향했다. 따스한 볕과 새파랗던 하늘과 스치던 바람이 좋던 봄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봄날이 찾아 오면, 2015년의 어느 봄날의 하동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 기억이 너무나도 따스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그는 지붕 위에 둥지를 튼 딱새를 위해 눈치 보고 사는 삶과, 산 생활의 외로움과, 통장 잔고의 액수와, 결과가 어찌 되었든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리고 참다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고결함과 순백함이란 무엇인지를 깨닫는 인터뷰였다.


그로부터 6년 뒤, 우연하게 문학상 두 개를 연달아 받았다는 그의 기사를 접했다. 한 달 생활비 30만 원도 남는다는 그에게 덜컥 몇 천에 달하는 상금이 입금될 참이고, 그게 무서워 밤잠을 설친다는 기사였다. 기사와 같이 게재된 그의 사진도 보게 되었다. 확고한 신념과 인생의 가치를 지닌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한 아름다움이었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린 걸 보았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갈망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물질이 아닌 마음의 무언가를 갈망한다.”


박남준 시인의 기사를 접하고 난 후, 잊고 살아 왔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로움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돈보다 행복을 쫓는다고 말한다면 위선일 것이다. 나는 성인이 아니기에 연봉이 높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좋은 집을 가진 사람이 행복해 보이고, 명품에 거침없이 투자하는 이들이 즐거워 보인다. 이 욕망은 얻을 때까지 결코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박남준 시인의 삶을 존경하면서 또 돈 많은 이들을 동경하는 삶.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내가 찾아낸 정답은 이런 것이었다. 언제든지 기억해 낼 수 있는 좋은 추억이 있는 삶, 잊지 못할 한 장면이 있는 삶,  그 어떤 재산보다 값비싼 추억이 있는 삶.  돈은 얻을 수도 또 잃을 수 있지만, 추억은 늘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시인이 들려준 음악이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오래된 초가집에서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가 흘러나왔다. 가장 편안하고 좋은 장소에서 이 곡을 들어도 그때만큼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쇼팽 프로젝트를 들을 때면, 자연스레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도 함께 생생하게 떠오른다.


예사로운 풍경도 어느 날 갑자기 빛나는 순간이 있다. 이런 행운이 늘 내 삶 곁에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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