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짐머만의 마지막 연주곡은 쇼팽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백발이 된 거장들의 연주회를 가게 되었다. 루돌프 부흐빈더, 빈필하모닉과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크리스티안 짐머만까지. 거장들의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들의 연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열정적이었으며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힘이 넘쳤다. 힘과 열정과 사랑, 그리고 이로부터 쏟아지는 무결함에 가까운 완벽함까지.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오래도록 그리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0년을 채 채우지 못한 내 일은, 여전히 완벽하지 못하고 하물며 부족하기까지 하다.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늘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미 저질러진 실수 앞에서는 한없이 절망만 쏟아진다. 늘 새롭고 번득이는 것들이 숨어있다 튀어나오고, 나는 늘 그것들을 뒤따른다. 언제쯤 내 일에 만족하는 날이 올까. 아마도 시간은 좀 더 걸릴 듯하다.
한 가지 일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는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게 되었다. ‘자신의 일을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내놓은 결과에 만족해하며 하물며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물론 정답도 없다. 하지만 대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이다. 선망하는 삶 역시 끝이 없는 결론 속에서도 꾸준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트 전, 무대에서 100%의 힘을 쏟아 내기 위해 300%의 준비를 했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트에 우승한 뒤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국내 리사이틀 티켓팅은 매번 매진을 이어가는 그이지만,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했다고 정의하기 어렵고 여전히 배워나가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내가 조성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문답에 다 있다. 그리고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발전은 없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의 이 명구는 언제나 일하는 내 자아가 항상 마음에 품어야 할 잠언이다.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껍질을 깨고 부수려는 투쟁이 필요하다. 나의 무지몽매한 껍질을 부수는 존재는, 다름 아닌 ‘겸손’이었으면 한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 남과 다름을 깨닫는 겸손, 질투하는 겸손, 미워하는 겸손, 좋아하는 겸손, 부끄러워하는 겸손, 가엽게 여길 줄 아는 겸손, 모르는 걸 아는 겸손, 가끔은 인정해도 되는 겸손, 칭찬에 목마른 겸손, 결국 나라는 겸손.
아집과 몽매에 갇힌 미성숙함을 깨부수고 깨어나려는 노력으로,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