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N년(?)이 흘렀다. 새삼스럽게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낀다. 몇 학년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회학과 수업이었다. 그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가 잠시 언급되었던 적이 있다. 영화를 좋아한 탓일까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내 대학시절만큼 재밌었던 '이 영화' 바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다.
나의 대학시절처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평범하지 않다. 액션 영화의 장르에 한정되는 영화는 아니라 생각된다. 화려한 액션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액션에 담긴 의미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화려한 액션 속 혼돈과 광기의 세계 안에서 인간성, 연대, 자유, 구원을 말한다. 1979년 첫 시작을 알린 <매드맥스>시리즈는 이후로도 여러 편 제작되었지만 그중 2015년 공개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기존 시리즈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형식과 메시지로 많은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세계가 무너지고 자원이 고갈된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지구는 황무지가 되었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주인공 '맥스'는 과거의 상처에 시달리며 외롭게 떠도는 생존자이다. 그는 물과 기름을 지배하는 독재자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피주머니'로서 전락한다. 그러나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여성들을 데리고 '시타델'을 탈출하고 '맥스'는 우연히 이들에게 합류하게 된다.
임모탄은 자신의 소유물인 여성들을 되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추격하고, 퓨리오사와 맥스는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위협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 단순한 플롯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 관객은 쉴 새 없이 펼처지는 액션에 몰입하게 된다.
'맥스'는 처음엔 '퓨리오사' 일행과 대립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인간성을 이해하고 함께 광기의 도로를 질주한다. 이들의 여정은 절망적인 세계에서 유일한 희망을 향한 투쟁이다. 영화는 탈출과 복수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이자,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순응할 것인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임모탄'은 물과 식량, 그리고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을 독점하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지배자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을 도구처럼 취급하며, 특히 여성들을 '아이 낳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등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인다. 퓨리오사는 이런 억압에 맞서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감행한다.
그녀의 행동은 폭력적인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구조 받는 여성'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서의 여성상이 영화가 여성주의적(페미니즘)이라는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맥스 또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고독하게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퓨리오사와의 동행을 통해 점차 변화해간다. 그는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움직이지만 조금씩 퓨리오사 일행의 강인한 의지와 연대에 동화되어 함께 싸우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은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피주머니'나 '워보이'들의 광적인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이념에 쉽게 매몰되고 폭력에 물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광기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소수의 존재들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타델'은 폭력적인 권력과 자원 독점의 상징이며 임모탄은 가부장제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를 보여준다. 그의 여성들은 억압받는 존재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망을 품고 있는 존재로 해석된다. 퓨리오사가 찾고 있는 '푸른 땅'은 자유로움과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상징하며, 그녀의 여정은 자유와 해방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워보이들이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자동차와 엔진은 힘과 속도를, 그리고 광기를 상징한다. 그들의 '발힐라'에 대한 믿음은 허망한 이념과 위험을 나타낸다. 임모탄과 그의 아들들은 권력욕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악당으로 폭력과 억압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워보이들은 광적인 믿음에 갇혀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며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절망적인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워보이'는 워보이의 방식으로, '맥스'는 맥스의 방식으로. '퓨리오사' 역시 강인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독재자 '임모탄'으로부터 억압받는 여성들을 구원하고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와 세계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퓨리오사와 그녀를 따르는 여성들, 그리고 맥스의 연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한다. 맥스와 퓨리오사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상호 의존적인 관계 또한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1985년 <매드맥스3> 이후 약 30년 만에 제작된 속편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매드맥스4>의 아이디어를 구상했지만, 9.11테러 이후 보안 강화로 인한 촬영 장소 문제, 멜 깁슨의 개인적인 논란 등이 원인이 되어 여러 차례 제작이 무산되었다.
결국 톰 하디를 새로운 '맥스'로 재탄생시키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의 광활한 사막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CG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실제 차량 액션과 스턴트 연기를 최대한 활용했다. 덕분에 이는 날것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과 현실감을 부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와 헬리캠은 관객이 액션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색채 또한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황량한 사막은 어둡고 흐린 노란색을 띠는 반면, 퓨리오사가 향하는 '푸른 땅'은 희망과 활기가 가득한 푸른색으로 느껴진다. 워보이들의 창백한 피부와 흰색 페인트, 불타는 차량의 검은 연기는 죽음과 파괴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개봉 당시 전문가들과 관객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실감 나는 액션, 강렬한 비주얼 등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퓨리오사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강인하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스토리와 액션에 집중한 나머지 깊이 있는 서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했다. 또한 여성 중심 서사에 대한 일부 남성 관객들의 불편한 시선도 존재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관왕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광기, 자유, 해방, 생존, 페미니즘이라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퓨리오사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구원의 이야기"라기보다 "저항과 회복의 이야기"에 가깝다.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 여성들의 자기결정권, 인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표현된다. 여성들이 임모탄의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뭉치고 서로를 보호하며 연대하는 모습은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무질서 속에서 자유, 해방,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곧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유요한 문제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이 작품은 '이야기하는 액션'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지 밀러의 미친 연출력, 샤를리즈 테론의 압도적 존재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들.
광기와 혼돈의 미친 세상. 순응할 것인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우리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오늘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