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레옹>은 1994년에 개봉했다. 이 시기는 냉전이 끝난 후 세계가 새롭게 재편되는 시기였고 특히 뉴욕은 범죄율과 부패가 극심하던 후반기에서 점차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영화에서 마약과 경찰의 유찰, 도심의 폭력,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과 성숙한 아이는 그 혼란의 시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시기 미국은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가족의 해체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레옹>은 정상적인 가족(?)의 해체 이후 대안 가족의 형성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레옹'은 뉴욕의 뒷골목에서 사는 '청소부(킬러)'다. 철저히 혼자 살아가는 그는 화분을 아끼고 규칙적인 일상과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12살 소녀 마틸다의 가족이 마약 사건으로 몰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문을 두드리고 레옹은 망설임 끝에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둘의 동거는 시작되고, 차갑고 무미건조했던 그의 삶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과 위험이 동시에 찾아온다.
<레옹>은 킬러 물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다. 이 영화는 감정의 경계를 미세하게 흔들며 가장 거칠고 폭력적인 세계 안에 깃든 순수함을 보여준다. 킬러와 소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 속에서 태어난 감정은 사랑인지, 보호본능 혹은 책임감인지 영화는 그 감정을 정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호함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마틸다의 입장에서 레옹은 처음에는 복수의 도구였고, 나중에는 살아남기 위한 도피처였으며,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존재로 바뀐다. 레옹 역시 처음엔 망설였지만 조금씩 마틸다에게 '가족'이라는 이름 없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레옹>의 핵심은 인간성 회복이다. 사람을 죽이며 살아가던 남자가 한 소녀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꿈꾼다. 처음에 레옹은 글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서툴러 한다. 하지만 마틸다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레옹>은 '폭력'과 '순수'라는 극단적인 요소를 한 캐릭터 안에 공존시키며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뤽 베송 감독은 <레옹>에서 캐릭터의 시선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인물의 클로즈업, 계단과 복도 같은 폐쇄적인 공간의 활용 그리고 카메라의 속도 조절은 긴장감과 감정을 폭발시킨다. 작품의 OST (Shape of my Heart)는 레옹의 쓸쓸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감정을 잘 보여주며 영화의 엔딩에서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레옹>은 킬러와 소녀의 미묘한 감정 때문에 여러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마틸다가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몇몇의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감독이 의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마틸다의 사랑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레옹>은 관객에게 말보다 조용한 침묵과 눈빛으로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레옹>이 감동적인 이유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틸다가 레옹의 화분을 심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레옹은 죽었지만 사랑은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뤽 베송 감독은 말한다.
"사랑은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마틸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레옹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
영화가 끝날 때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 그것은 영화가 남긴 아름다운 총성이자 조용한 사랑의 고백이다.
오늘의 영화 <레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