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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후 Sep 30. 2021

신변잡기를 쓰기에 앞서...

그냥 한 사람이고 싶은 아줌마의 이야기

은 시절의 나는 한 번도 내가 아줌마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줌마의 삶은 어떨 것이라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아줌마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고 동네에서 볼 수 있고 사회의 언저리에 있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줌마가 되었다.

나는 그저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그런 아줌마 부류에 들어와 있었다.

분명 아줌마이긴 하다.

내 정신이 아직 20대일지라도 내 신체와 나이는 이미 예전에 아줌마 부류에 속했다.

지하철의 빈자리에 가방을 먼저 던진다는, 아이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린다는, 떼로 몰려다니면서 커피를 마시고 여기저기 갑질을 한다는,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이 없이 뻔뻔하다는...

대부분 아줌마의 희생 위에 살면서 사회의 악의적 편견에 찌들어있는 그런

 A.ZOOM.MA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줌마들의 이미지는 강하고 투박하고 포근했다.

나는 강하고 투박하거나 포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언제나 밝고 당당할 줄만 알았던 내가 어느새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괜찮은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나는 과연 행복한가?


앞으로 쓸 이야기들은 젊은 시절의 내가 결혼과 육아를 하며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관한 이야기, 나를 비롯한 아줌마들의 삶이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생각을 경험을 담아 쓸 예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로부터 일기 쓰기를 강요당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제출일에도 그 전날 밤에야 겨우 숙제를 써서 냈고, 방학 때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개학 며칠 전날부터 밀린 일기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일기가 강제일 때는 미루고 미루다 겨우겨우 써서 내곤 했지만, 조금 자라 일기의 숙제에서 해방된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아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글로 남겨왔다.

그렇게 일기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특히, 울고 싶거나 화가 날 때, 일기는 나를 위로해주는 가장 고마운 친구였다.

일기에는 내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고, 나의 생각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주었다.

또한 그 이야기를 내가 다시 봄으로써 나의 감정을 독자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공감해주고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내가 쓰던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반성을 하거나 결심을 할 때에도 좋은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봄으로써 나는 다시금 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꿈을 꾸게 했다.

조금 더 자라 개인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에도 일기장은 필수항목이었다.

내가 뭐하고 사는지 일기장에 그대로 적었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열어두었다.

그렇게 내 종이 일기장을 비롯한 개인 홈피에 일기를 쓸 때는 어떤 것을 써도 상관없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겪었던 일들, 그에 관한 내 생각들...

초등학교 때는 언니가 내 일기장을 훔쳐보았고, 스물여덟 살에 개인 홈피의 일기장은 공개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설령 다른 사람들이 보더라도 상관없었다.

일기는 그저 그 사람 개인의 생각과 이야기이므로...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내 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글이 저장되는 곳이다.

그리고 많은 이에게 읽히는 글이기에 조금은 두려운 곳이다.

내가 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내가 쓴 글이 과연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이야기, 누구나 공감되는 이야기만 쓴다면 이야기들은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다.


홈피를 통해 공개적으로 일기를 쓰던 내가 나의 신변잡기에 관한 글쓰기가 두려워진 시기는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내가 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나의 주변과 남편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 나의 시선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표현된 남편은 남편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수 있고, 그가 생각하는 나 역시 내가 글로 쓴 나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해서 만난 사람이지만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아마 남편으로서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이다.

낮과 밤을 함께 공유하기 힘든 해와 달 같은 존재랄까?

연애를 하던 그때의 나는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기 때문에 그와 결혼의 실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복선이 여기저기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왜 두 눈과 귀를 닫았던 걸까?


장드라마와 같은 허구의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나는 결혼을 하고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재의 인물을 작가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재의 인물들을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바라보는 관점의 사람들로 만들어내므로 실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실제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의 성격이나 습성은 글쓴이가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고, 한 작가를 통한 시선이 글에 표현되는 실재 인물들을 천사나 괴물로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공개적인 일기나 에세이 형식의 글쓰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상대가 겪었던 어린 시절이나 성정과정에서 겪고 느꼈을 경험과 생각을 내가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글쓴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본인의 습성이나 성격이 상대를 천사나 괴물로 바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상황과 관점으로부터 완전히 객관적인 글쓰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그럼에도 나는 조심스럽게 내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부터 시작해서,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떤 이들의 행동과, 뉴스에서 나오는 스토킹, 가스 라이팅, 데이트 폭력, 살인, 가족 내 폭행과 언어, 비언어적 폭력, 여전한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여성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왜 모두들 그렇게 조용히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죽어지낸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비슷한 문제인 결혼은 과연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사회는 왜 결혼제도에 목을 매며, 왜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아야 정상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가 등등...

결혼 전과 결혼 후에 느낀 나의 결혼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들도 적어볼 생각이다.


나의 이야기가 항상 무거운 것은 아니다. 단지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쨌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과 그 밖의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특히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은 힘든 자신의 이야기를 사회와 공유하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에 더더욱 나는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유난 떨지 마라, 너만 힘든 거 아니다, 다 그렇게 살고, 다들 너만큼은 한다."라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육아와 살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며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씨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도 힘든 시대인데 육아 이외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양육자를 벼랑으로 내몰게 만든다. 주양육자는 육아로 인해 행복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어 자존감이 땅속까지 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 주변에서까지 양육자를 힘들게 하면 육아는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뜻이다.


내 이야기는 아직 결말이 없다.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나도 그대로이다.

해와 달은 한 집에서 각자의 낮과 밤을 지내고 있고 폭발의 불씨는 늘 그 자리에 있으나 서로 못 본 듯 안 본 듯 그렇게 넘기며 지내고 있다.

 

제 시작할 나의 이야기들은 모두 나의 경험과 사실들을 바탕으로 적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적은 것이므로 독자들은 그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 하나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거칠 것이 없던 젊은 날의 내가 연애, 결혼, 육아를 겪으며 느낀 이야기들이 아직 젊은 누군가에게 앞으로 남은 긴 삶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면 좋을 것 같다. 더 나아가 점점 다양해지는 삶의 형태에 대해 서로가 이해하고 포용하는 분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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