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K-아트페어에 다녀와서
엊그제 전시회를 다녀와서 느낀 점...
개인적으로 호텔 객실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 참여다.
K-아트페어(이하 "KAF")는 제1회로, 처음 열린 전시회라고 한다.
제1회.
어제를 마지막으로 참가자 모두들 첫 번째라는 숙제를 마치게 되었다.
전시회 몇 주 전, 내가 참여한 갤러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수 있는 입장권을 나에게 주시기에 나는 잠시나마 전시회 운영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고, 왜 표를 무료배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전시회 정보를 찾아보니 이번 전시회가 또다른 큰 전시회와 날짜가 겹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어찌됐든 나는 친한 아줌마들 몇몇에게 입장권을 보내고, 시간 되는 분들만 가시라고 알려드렸다.
엊그제 한 아줌마의 친구분이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내오셨다.
내 그림 옆에 뚱한 표정으로 서있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많이 지루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녀온 날은 주말이었음에도 많이 한산했다.
아주머니들 몇몇이 2, 3명씩 붙어다니기도 했지만 사람이 너무 적어서 조용했다.
작년에 갔던 첫 번째 호텔 전시회와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첫 번째 호텔 전시회는 밝고 화사한 바닷가배경에 전시장 내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붐볐고 작품들도 아주 많고 화려했다. 기차표 시간이 빠듯해서 많이 못봤는데도 그 정도였다.
이곳은 도심의 객실이기도 했지만 조명이 대체로 어둡고 사람도 적고, 분위기가 많이 부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객실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면 가끔씩 갤러리 관장님, 혹은 작가분이 직접 오셔서 도슨트 역할을 해주셨다.
의도치 않게 간혹 관장님이 손님들과 수다를 떠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술계의 이면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작가분의 학력이나 약력이 얼마나 화려한지를 알리는데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분은 뜬금없이 자기 자식이 클래식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가 하면, 유학을 다녀오고, 해외에 가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어떤 작가분은 조용히 관람하고 싶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내눈에는 별 느낌이 없는 본인의 작품들을 너무 멋지지 않냐며 계속해서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에게 호평을 유도해서 조금 불편했다.
물론 다른 많은 갤러리 전시실에는 종종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들이 있었다.
민지 작가님의 동물들 그림,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한민수 작가님의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희화한 그림, 목련꽃과 얇은 선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 북극곰과 토끼 등의 동물들을 그린 현성 작가님의 작품, 도자기 위에 푸른 물감으로 그려놓은 작품 등등 가격을 떠나서 소장하고 싶은 정말 멋진 작품들이 꽤 많이 있었다. 나로서는 기본기가 되어있는 그림들이 솔직히 더 마음에 들었고 편안했다. 그게 아니라면 색채든 형태든 구성이든 어딘가 감각적인 느낌으로 사로잡는 그림이 좋았다.
민지 작가님의 아기코끼리 두 마리 그림은 가격도 10만원이고 너무 귀여워서 진심으로 구매를 고민했다. 이정도로 맘에드는 그림이라면 돈을 주고 사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작품 전체의 크기는 고작 손바닥 두 개 정도였고 코끼리는 100원 동전만한 크기였다.
그러다 퍼뜩 나도 오프라인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집에 있는 캔버스에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서 집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작품과는 다른 그림이 되겠지만...
하지만 집에 와서도 여전히 그 그림이 눈에 밟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관람을 하면서도 여전히 어떤 그림은 왜 그렸는지 모르겠고, 감흥이 없는 그림들도 많았다.
아마 내 그림도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화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의미 없는 삶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부여잡게 해주는 동아줄같은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 그림들 하나하나가 작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충분히 공감한다.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때문에 이번 KAF전시회에 사람이 너무 적게 온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KIAF가 KAF와 비슷한 전시 위치에 이틀 동안 기간까지 겹쳐서 한쪽은 울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KIAF는 바로 옆 코엑스에서 하는 전시회인데 꽤 큰 것 같았다. 큰 작품들이 아주 넓은 공간에서 그것도 국제적으로, 나름 시대를 대표한다는 유명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KAF의 어떤 갤러리 관장님들은 자신의 갤러리 작가가 두 곳에 모두 전시를 했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 두 전시회는 이렇게 비슷한 날짜에 열 수 밖에 없었을까?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비교적 자유로운 전시회와 품격있고 권위있는 전시회.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두 갈림길이 결국 미술이라는 같은 점을 향하고 있음에도 한쪽은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부분의 전시회가 그렇듯, 이곳도 전시회 겸 그림을 파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갤러리는 한 점이라도 그림을 팔기 위해 관람객들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대놓고 작품성보다도 투자목적으로 소장하라고 권유하는 관장님도 있었고, 작품의 제목이나 작품성이 아닌 가격으로 구매이유를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미술작품과 돈....
다른 얘기지만, 요즘 혼자 사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주에서도 미술은 물질에 속한 영역이라고 본다. 달리 말하자면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도 꽤 오래 그림을 그렸고 미술이 주는 심리적 위안의 효과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지만 미술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재료비가 꽤 많이 든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온라인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전통 미술의 경우에는 형태와 구도, 선 연습, 색채조합 등의 오랜 연습을 해서 일정 수준에 올라가야 돈을 벌 수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연습을 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재료비가 만만찮게 들어간다. 초보는 그림실력은 없어도 재료는 프로와 똑같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잘 그리게 될 때까지 재료비를 퍼부어야 한다. 알다시피 유명한 작가들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캔버스에 여러 작품들을 겹쳐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을 통해 그림을 완성하면, 작품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돈과 예술.... 예술이 다 그렇다지만 미술이 가장 심한 것 같다. 요즘에는 작품 경매 등으로 어떤 작품들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어떤 작품들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에 비하면 음악은 정신적인 부분에 속해있다. 음악도 돈이 많이 드는 영역이지만 미술만큼 물질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클래식음악도 레슨비나 좋은 악기를 구입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든다.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은 여유있는 집에서 많이 시킨다. 물론 노력과 재능도 중요하다. 비단 클래식이 아니어도 요즘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많은 돈이 오고 가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음악전공을 하기도 하고, 음악을 하려면 어쨌든 악기를 사거나 전자기기를 사야 한다. 좋은 악기를 사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음악도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만들지만 요즘은 좋은 장비들로 비교적 쉽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음악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어 인기를 끌게 되면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는다. 하지만 음악은 만질 수 있는 현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렇게 미술은 사주에서나 실제로나 물질에 너무나 맞닿아 있는 특성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지금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지만 태블릿 모니터를 사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오프라인으로 그릴 것인가 태블릿 모니터로 그릴 것인가 였다.
엄마에게 졸라서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나이가 한참 지난지라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했다.
태블릿 모니터는 한 번에 큰돈이 들어가지만 사고 나면 더 이상 큰돈이 들지 않는다. 그림을 완성해도 오프라인에 작품이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작업을 하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재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작품이라는 물질이 집에 쌓인다. 게다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엄마가 작품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취미로 하는 나에게는 태블릿 모니터라는 도구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구매했다.
요즘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전공자 비전공자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권위있는 전통미술시장에서는 여전히 학벌과 약력을 은연중에 기본사항으로 두고 있는것 같다. 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가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미대를 나오는 것이 추상화를 그리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또한 예술은 똥이라 표현했던 한 영화('상류사회')의 말에 사실 나도 공감을 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예쁜똥, 좋은똥, 황금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의해, 음악에 의해, 춤이나 연극같은 공연에 의해 치유받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때문이다. 더 많은 영감을 주고, 더 많은 영향을 주고, 더 많이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똥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런 황금똥을 전공자만 눌 수 있다고 말하는 그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나는 종종 그림을 그리면서도 가끔씩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때가 있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내가 지금 왜 이걸 그리고 있을까 하는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아무 소득도 없고, 내 시간을 빼앗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자기만족으로 그리는 이 그림을...
그래도 완성을 하고 나면 가끔 뿌듯하다. 그놈의 자기만족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다 좋으니까...
하지만 매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똑같은 현타가 그림을 방해한다.
KAF전시회는 10층, 11층, 12층, 총 3개 층에 전시가 되었다.
그 많은 갤러리와 그 많은 작가들과 그 많은 작품들, 그 많은 팸플릿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나는 왜 내 그림을 출품하려 하는가? 한푼도 벌지않는 작가가 팔리지 않는 그림을 전시회에 계속 출품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계속 그림을 그려댈 수 있을까? 그렇게 그려대면 언젠가는 이름을 가진 작가가 될 수 있는 건가? 나는 과연 그림이 맞는 사람인가, 등등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것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멋진 작품들은 많이 나올 것이다.
내가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지 않으면 내가 남기고 싶은 그림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아주 가끔씩이라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혼자 전시회를 보러 다녀온 그 몇 시간이, 이렇게 나에게 글을 쓰도록 정신적인 힘과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고로 똥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