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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Apr 14. 2018

도성암

한 떨기 붉은 양귀비꽃이 피었다 지듯

도성암은 지고 없었다

 

우이동 남쪽 동구(洞口)

풍기(風氣) 불범(不凡)한 곳에

세종의 부마 양효공과 정의공주가 세웠다는

 

낮이면 흰 구름이 돌다리를 감싸고

밤이면 우렁찬 물소리가 세속의 번뇌를 씻어주었다던

해탈경(解脫境) 


아흔 칸이 넘는 불당에는 형형색색의 단청을 올리고

황금으로 장식한 불상(佛像)과 금자사경(金字寫經)은

삼각산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였다고 하나

 

임진년(壬辰年) 병화(兵禍)에 겨우 법당만 남았다가

숙종 연간에 삼연(三淵)이 찾았을 때는

그마저도 불타 없어지고

 

메밀꽃만 흐드러지게 피었더란다

압각수(鴨脚樹)만 홀로 푸르렀더란다 


여름 지나면 가을 오고

가을 지나면 겨울 오는 법

 

이루어짐과 무너짐은 진실로 한 꿰미이니 

한 떨기 붉은 양귀비꽃이 피었다 지듯


도성암은 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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