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에 떠난 동파(東坡)가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났다
칠척 장신의 큰 키에
머리에는 오각건(五角巾)을 쓰고
가늘고 긴 눈과
산양(山羊)의 수염을 한 그는
반쯤 취한 듯
무릎 위에 지팡이를 올려놓은 채
길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평생토록 신선을 사모하였고
연단술(練丹術)에 도통했다고는 해도
죽어서도 죽지 못한 채
살아있는 자들보다 더 바쁘게,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로
화가이자 서예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파
"내 평생의 공적을
황주, 혜주, 담주라 하였더니
죽어서까지 이리 힘들게 살아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소."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의 두 눈에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조맹부 작 「동파소상」- 동파소상은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이자 서예가인 조맹부(1254~1322)가 행서로 쓴 『전·후적벽부』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그림이다. 현재 고궁박물원 소장이며 조맹부 49세 때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