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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Aug 11. 2018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현해당 시집 출간에 부쳐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증이 일어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드려보니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 ‘세상에서 가장 큰 빌딩’, ‘세상에서 가장 큰 비행기’ 등의 제목만 눈에 띌 뿐,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위정자에게는 국민들의 아우성소리가 가장 큰 소리일 테고, 아니 소리여야 하고, 악덕 기업주에게는 노동자들의 함성소리가 가장 큰 소리일 테고, 아니 소리여야하고, 부모에게는 자식이 끙끙 앓는 소리, 연인에게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비정한 한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이겠지만, 그날 아침 내게 들린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다름 아닌... 꽃이 지는 소리였다. 4월도 다 끝나갈 무렵, 작은 연못가에 앉아 물속에 비친 하늘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벚꽃 잎 하나가 물위에 떨어졌다.
  
작은 꽃잎 하나
떨어져
물 위를 스칠 때
  
여기
온 우주가 흔들리는 소리

           -시 「화무십일홍」 전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흔히 권불십년(權不十年)과 함께 권력의 무상함을 풍자하는 성어로 쓰이고 있지만, 그러나 ‘열흘 붉은 꽃 없다.’라고 하는 그 본래의 뜻이야말로 인생과 자연과 삼라만상 온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촌철살인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늙지 않을 수 없고 병들지 않을 수 없고 죽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삶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때로 두려움과 외로움과 그리움과 허무함이 동반한다. 그러니 꽃이 지는 소리, 계절이 바뀌는 소리, 세월이 가는 소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이고, 세상의 어떤 파문보다도 더 큰 파문이 아니겠는가?
  
어린 꽃잎 하나가
쿵하고
아파트 화단에 
떨어졌다
  
놀란 참새가
푸드득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더 이상의 파문은 없었다
  
-시 「파문」 전문-
 


시란 무엇일까? 오랫동안 시를 쓰고 가르쳐 왔으면서도 막상 그에 대한 정의를 요구받는 상황이 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시는 거대한 코끼리이고 나는 그 다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장님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누구는 그것을 노래라고 하고 누구는 하소연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철학이라고 하고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의 윤곽이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정형성은 과거에 시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지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탈정형의 시대에 도대체 시와 산문의 구분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시의 특징을 대략 형식의 짧음, 정서적 충만감, 함축성, 운율 등으로 정리했을 때,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시인가? 아닌가?

우리 집 늙은 하인이 헛간 지붕에 
아름다운 앵무새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곧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그 앵무새를 잡으려고 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앵무새에게 다가갔다
그랬더니 앵무새가 "안녕?"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하인은 모자를 벗고 앵무새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이 날짐승인줄만 알았군요!" 
  
사실 위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소년 시절」 중의 일부를 옮겨 놓은 것이다. 처음부터 시로 창작된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 특별히 시가 아니라고 할 만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동안 쓴 시들을 묶어 시집을 출간했다. 일 년에 겨우 서너 편 시를 쓰니 그 속도로 봐서 평생에 두 권의 시집이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온 인생이 뻔하니 내용이야 보잘 것 없지만 나름 몇 가지 파격적인 시도를 해본 데에 의의를 두려 한다. 고전 속의 명문을 풀이하여 시로 만든 것도 있고, 또 교훈이 될 만한 짧은 글-주로 우언(寓言)-을 시에 접목한 것도 있다. 심지어는 앞에서 인용한 헤세의 작품처럼 국내 작가의 유명 소설의 일부를 제목만 붙여서 시로 만들어 본 것도 있다. 물론 출처와 원작자를 분명히 밝히고 저간의 사정을 적었다.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지만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이 우리 시의 지평을 넓히고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조금의 기여라도 했으면 좋겠다.  2018. 8,  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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