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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Nov 02. 2017

노인과 고양이

가을이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열매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이웃집 노인은 오늘도 아침 일찍 빗자루를 들고 나와 집 앞 골목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건만 노인은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들을 쓸고 또 쓴다.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은 모두 잿빛이다. 꼭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듯한 기세인데 눈이 오기에는 아직 계절이 너무 이르다.


“이놈의 나비 새끼들, 저리 가거라, 저리 가!”


가을이 주는 ‘상실감’ 때문인지 잠시 몽롱한 기분에 젖어있을 때, 문득 노인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차,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빗자루를 휘두르며 우리 집 고양이들을 쫓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멋모르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롱이와 모모는 난 데 없는 호통에 잽싸게 몸을 피해 집으로 달아나 버렸다. 


“할아버지, 쟤들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예요. 보통 길고양이랑은 다르다고요!”

“나쁜 놈들.... 허구한 날 우리 집 마당에다 똥을 싸고 가...!”


고령인 데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 노인에게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 눈에는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똑같이 못된 녀석들로 보이니 말이다. 롱이 모모야 억울하겠지만 어쩌랴? 사는 게 본래 그런 것인 것을... 

옛날, 술 좋아하는 어떤 고관대작이 그날도 어김없이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술이 너무 과했는지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단다.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를 발견하고 흔들어 깨웠다.


“이것 보슈, 노인장! 날씨도 추운데 이런 한 데서 자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이니 어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슈.”


비록 선의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고관대작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단다.


“이런, 천하의 고연 놈 같으니라고.... 노인장이라니? 내가 누군지나 알아?”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해 한 데서 잠이 들었으면서도 자신을 몰라보고 노인장이라 부르는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내가 귀여워하는 고양이라고 남들도 다 귀여워하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남들 눈에는 한갓 술 취한 취객일 뿐이요, 내 눈에 아무리 예쁜 고양이라도 남들 눈에는 한갓 성가신 도둑고양이로 비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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