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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Aug 06. 2020

#8. 땀 한 바가지 흘린 등교 개학 후기

마스크와 더위와 싸우는

6월 3일, 아침부터 부랴부랴 뛰었다. 등교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몰리는 중이었고 교실에는 벌써 두 명의 아이가 와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커다란 가방을 멘 채 복도를 서성이는 아이들을 불러 체온부터 쟀다.


35.7도. 번호 확인하고 실내화 가방 넣고, 정해진 자리에 앉으세요.
책상, 의자 닦고 가방 정리하고 손 씻고 나서 소독 젤 바르고 기다리면 됩니다.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도 교사는 갈 길을 간다

뛰어오느라 마스크 안팎으로는 땀이 흥건하고 교실 안에서 어리둥절한 아이들 챙기랴 복도로 오는 아이들 세워 체온 재고 들어 보내랴 정신이 없었다.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가정학습을 쓰겠다며 연락해오신 학부모님이  있어 온라인 강좌도 헐레벌떡 열었다. 메신저에는 쪽지가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감동적이게도 아이들이 전날 칠판에 적어둔 미션을 착착 해결해 나갔다. 집에서 얼마나 학교에 오고 싶었는지 "다음엔 뭐해요? 이제 뭐할까요?" 물으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모양새가 군기가 팍 든 신병 같았다. 아쉽지만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할 수도, 학급문고에서 책을 빌려볼 수도 없어 소지품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방송으로 이어진 시업식에서는 교장선생님이 한바탕 안전수칙을 이야기했다. 덧붙여 나도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어렵다 마치 거대한 실험실에 갇힌 생쥐들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차분하게 듣고 마스크 안에서 재잘대며 반응했다.


5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과 낯선 블록수업을 버티고 쏟아지는 안내장과 주의사항을 견디면서도 오늘은 무사히 넘겼다. 모둠활동도, 친교 놀이도, 토의도 안되니 학급 세우기가 난감하기는 했다. 상호작용이 극도로 줄어든 교실에서 한 시간 내내 떠드는 라디오가 된 기분...


얘들아 우리 친해지자...(출처 영화 '벌새')

점심이 가까워오자 아이들이 배가 고픈지 자꾸 메뉴를 알려 달라고 했다. (하루 중 가장 활기찼다.) 밥 먹기 전 체온을 재고 손을 씻은 뒤 줄을 세우려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복도에 줄을 세워 이동하는 연습을 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간격이 넓어 아이들이 떨어져 서는 것을 헷갈려했고 거리를 두고 설만한 공간이 안 되다 보니 순서가 엉켜 버렸다. 분명히 전직원 회의, 학년회의에서 점검했던 뉴얼인데 또 땀이 흘렀다.


식판을 받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아무 말없이 로봇처럼 밥을 먹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안타까웠다. 원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돌아가는 게 급식시간인데 숨 막히게 차분한 점심시간이 어색하기도 했다.

(물론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바로 하교를 시킨 다음 빈 교실에서 곧장 마스크를 벗었다. 등교 첫날 에어컨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KF94는 사치구나. 내일은 덴탈 마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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