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다.

이상한 나라의 돌봄일대기[04]

by 곰곰

어제는 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이 기각됐다. 오늘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잔뜩 흥분한 채로 나를 왜 여기 데려다 놨냐며 집에 가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정신없이 학교 일을 처리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힘이 빠진다. 붙잡고 있던 것들이 풍선 속 바람 빠지듯 빠져나간다. 이런 날에는 그냥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는 대로, 혼자서 알아서 사시라고 내버려 두고 싶다. 대체 왜 또 심기가 불편해진 건지, 무엇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알 수가 없다.


원래 치매 걸리면
고집하고 자존심만 남아요.


건너편에서 사회복지사가 나를 위로한다. 처음 몇 달 간은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단다. 할머니는 더 이상 이런 데 안 오고 싶다고 센터의 복지사들과 실랑이를 했고, 시위라도 하듯 밥도 거부했다고 한다. 반찬이 싱겁다고 해서 따로 반찬까지 했는데 결국 안 드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전화를 넘겨받아서 집에 가서 강아지도 보고 시골에도 가야 한다며 왜 나를 여기로 보냈냐고 따졌다. 이럴 때 할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꾹 참고 천천히 물었다.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좋다며. 친구들도 있고. 진짜 안 다닐 거야?"

할머니는 여기 안 와도 넉넉히 혼자 밥 차려먹고 잘 있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전기포트를 올려 태워먹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으면서.




올해 들어 할머니의 상태가 빠르게 안 좋아지면서 걱정이 컸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할머니가 아시는 분을 따라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셨고 거기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일명 어르신 유치원으로 통칭되는 곳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동생과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시설을 둘러본 다음 설명을 들었다.

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점심식사에 간식까지 주고, 각종 프로그램에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도 있으니 혼자서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등록 의사를 밝히고 공단에 치매등급 심사 서류를 제출해놓았다.

동네산책은 할머니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하필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는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면역력이 취약한 노령의 할머니가 혹시나 감염될까 봐 한동안은 집에만 계시라고 했다. 바깥활동이 줄어든 데다 가까운 곳도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하니 할머니는 무척 힘들어했다.

바이러스가 위용을 떨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집에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나다녔다. 그녀는 TV며 핸드폰을 새로 바꾸고 돈을 써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물건을 놓고 오거나 길을 잃어버렸다. 주말에는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평일에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큰 문제였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좀이 쑤신 할머니 집에만 가둬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머니는 다음날 유치원에 신고 갈 빤딱구두를 골랐고, 새로 산 구두를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할머니가 고른 구두

자취방에 도착해 할머니에게 저녁을 얼른 먹으라고 당부 전화를 한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귀에서 피가 나고 횡설수설한 채로 5층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계셨단다. 누구든 부르라고, 얼른 오라고, 올 사람 없냐고 대답을 내놓으라는 수화기 건너편에 머리를 쥐어짜 봐도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던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광주 근교에 사는 친척동생에게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버스 타기 전 휴대폰 문제로 화를 냈던 것, 정신없는 채로 휴대폰 대리점에 간다는 할머니한테 마음대로 하라고 쏘아붙인 후 급하게 집을 나온 것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다음에는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가다 구르는 장면, 허둥대며 의식 없이 헛소리를 하는 장면, 소리 지르며 미친 듯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이어졌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알 길도 없었다.


그 날 저녁,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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