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때부터 약 5년간 할머니와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나는 쌓이는 감정을 해소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 소리를 지르거나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사거나 울면서 주변에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갈등이 아니라 위기였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 중환자실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할머니는 자꾸만 아이가 됐다. 거동을 제대로 못해 누워 있었고, 수시로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가끔씩은 눈물을 보였고, 음식물을 좀체 삼키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 옆에서 나는 티비를 보고, 밥을 차려먹고, 잠을 잤다. 삶이 나에게 너는 그러고도 사느냐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구질구질한데도 살고 싶니? 이런데도 살아지니?"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어디엔가 쏟아버릴 수도 없는 축축한 절망감에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게 최선이구나. 나를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나구나.
힘든 날에는 양파를 채 썰어 오래 볶는다.
기름에 달구면 불투명한 양파가 투명해지고, 점차 팬에 눌어붙으며 갈색을 띤다. 밥을 오래 씹으면 들쩍지근하게 달라붙는 것처럼 양파를 오래 볶으면 흐물한 단맛이 난다.
사람도 단단했다가 시간 속에서 뭉근하게 익으면 다른 맛을 내는 걸까. 이 모든 것들도 오래오래 씹으면 단맛이 날까.감자를 갈거나 당근을 썰거나 삶은 달걀을 으깨 음식을 했다. 무언가에 시간을 들이는 순간에는 걱정도, 불안도 잠깐 떠나갔다. 정성 들여 장만한 음식을 먹으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생각은 수용성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타지에서 자취를 하는 중이다. 일과가 끝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는 뜻이다. 평소의 여유와 자유로움은 힘들 때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변질되기 쉽다.고통스러우니 생각으로 도피하고, 생각을 파고들다가 더 고통스러워지기 일쑤였다.
산책을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온통 혼자인 방 안이 다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사람이나 차, 가게의 소리를 듣고, 가로등 불빛이나 노을 지는 하늘을 보고, 풀냄새를 맡는다. 근처 공원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좋다. 내키면 이어폰 볼륨을 높여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숨차게 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와 씻으면 땀과 함께 고민도 한꺼풀 씻겨 내려간다.고통은 수용성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누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보단 뭐든 하며 땀을 줄줄 흘리는 편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글로도 울 수 있다. 힘들 때는 글이 잘 써졌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일기쓰기를 즐겼다. 처음에는 선생님께 예쁨을 받으려는 소심한 관심끌기 정도였다. 나중에는 칭찬을 듣고 자잘한 상을 타면서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착각했다.오랫동안 일기를 썼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 바빠지고 직장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큰 맘먹고 장만한 다이어리는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피로와 귀찮음을 이기고 펜을 들 시간에 휴대폰을 뚱땅거리며 누워있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힘든 일이 생길 때에는 종이에 마음을 게워내고 싶었다. 아무도 읽지 않기에 추접스러운 것들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털어내 버리면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써 내려간 다음 구겨서 찢어버린 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매 순간 삶을 써 내려가는 셈이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어서 지나고 읽으면 내가 쓴 게 맞나 싶은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다음에는 고통도 좀 잊혀졌다.
나는 지금 최악이다.
새벽에 깼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잠들 수 없었다. 할머니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서부터 응급실에 간 기억까지 떠오르며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급속도로 기분이 다운됐다. 몸은 자리에 누워있는데 마음은 땅굴로 떨어진 것 같았다. 결국 눈물이 났다. 왜 불안한지 곱씹지 말고 호흡으로 돌아오라고 명상 어플 속 목소리가 말했다. 명상은 요즘 내가 의지하고 있는 위로 방법 중 하나로, 올해 초부터 실천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쉽게 진정이 안 됐다.크게 호흡을 했다. 여러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자꾸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불안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공식은 무엇인가요? 이것만 하면 행복해질거야, 또는 이걸 못하면 내 삶은 끝날거야. 하는 것들이요."
나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쥐고 살아왔다. 강박은 심장과 같아서 삶을 지탱하려면 계속 펌프질을 해야 한다. 가족들이 짐을 지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강박을 꽉 쥐고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최악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게 무너진 상황이요. 여기 최악을 겪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나의 최악을 상상했다. 집 안에 환자가 한 명 더 생기고, 할머니 상태는 악화되고, 직장에서는 문제가 터지고, 더 심하면 내가 일을 못하거나 할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지. 창문을 열고, 난간을 잡고 섰다.
어슴푸레한 거리에는 축축한 공기만 떠다녔다.
최악의 상황이 생겨도 살아갈 수 있을까. 엄청나게 고통스럽겠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견뎌낼 것이다. 결코 삶을 포기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미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할머니가 다른 사고로 수술을 했던 다른 최악도 지나왔다. 몇 번의 고비들을 되돌아보니 참 새삼스러웠다. 벼랑 끝까지 밀려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여전히 살아서 서 있다. 또 다른 절벽 앞에 서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이 악취를 풍겨도 살아갈 수 있다고 나에게 속삭였다. 새벽 5시 17분이 건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