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대며) 내가 열어놨냐...? 나 안 열어 놨는디..." "이거 봐! 여기 열려있잖아! 아, 이러면 모기 들어온다고 몇 번을 말해, 방충망은 닫으라니까!" "바람이 안 들어온디..."
"아, 그럼 할머니 나가서 모기랑 살아!"
할머니의 취미는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할머니는 낮이고 밤이고 베란다에 가 창문을 열고 바깥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심심할 때 할머니는 누가 올까 싶어 늘 밖을 살핀다. 호기심 많은 강아지 같다.
그러나 오라는 손님 대신 열린 창문으로 모기들이 들어왔다. 나는 숱한 밤, 울며 겨자먹기로 잠에서 깨 모기를 잡아야 했다.
어느 날, 참다못해 동생이 전기 모기채를 사 왔다. 나는 모기 잡는 전사가 됐다.
할머니, 제발 잠 좀 자!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새벽잠이 없어지는 노인의 특성에 불규칙한 수면 패턴이 더해지면서 밤 12시든 새벽 3시든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고 이것저것 뒤적이거나 거실을 돌아다니며 중얼중얼 댔다. 모기가 괴롭히지 않는 밤에는 할머니 소리에 일어나야 했다. 할머니 혼자서 무슨 사고를 칠까 봐 걱정이 돼 오던 잠도 금방 달아났다.
예전에는 TV 소리로 할머니와 자주 싸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할머니는 이제 음소거를 하든 음량을 최대로 올리든 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할머니 방의 TV는 보통 24시간 내내 켜져 있는데, 주무시는 동안 몰래 TV를 끄고 가도 10분 뒤에는 귀신같이 TV가 켜져 있었다. 할머니의 귀가 어두워지면서 TV는 음소거와 확성기가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다른 방에 있어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못 견뎌했고, 할머니는 아무리 해도 안 들린다며 100까지 음량을 올렸다. 리모컨으로 하던 실랑이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이제는 소리 없는 TV 화면만 바쁘게 할머니 곁을 지킨다.
할머니, 제발 먹을만큼만 하라니까 먹을만큼만!
나는 필요한 만큼 식재료를 사서, 하루 이틀 이내에 남기지 않고 해치운다. 머릿속에는 집에 있는 식재료의 유통기한과 레시피가 꼼꼼히 맞물려 돌아간다. 대학교 때부터 본가에서 나와 독립을 하면서 집밥을 즐기는 만렙 자취생이 됐으니 이 정도는 껌이다. 당일생산 당일소비는 나의 미덕이 됐다.
할머니 사전에 그런 건 없다. 그녀는 한 때 넷씩이나 되는 손자들을 먹이던 짬밥으로 멈추지 않는 큰손이 주특기다. 정신이 흐릿해져도 할머니는 상추를 한 움큼 사다가 액젓을 가득 넣고 겉절이를 담갔고, 한 솥씩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슬프지만 할머니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어 결국 아무도 할머니의 요리를 반기지 않게 됐다. 미각이 둔해지면서 할머니는 소금이나 간장을 쏟아부어 간을 했고, 저세상 가버린 위생상태에 너무 짠 반찬들은 냉장고 자리만 꾸역꾸역 차지했다.
음식이 쉽게 상하는 여름철에는 더욱 난감했다. 할머니와 밥을 같이 먹을 때는 내가 먹을 것을 따로 덜었다. 몇 번 집어먹다 남은 반찬을 할머니 몰래 버리는 스킬도 썼다. 할머니는 이제 요리를 하지 않는다. 다된 밥을 차려먹는 것도 힘든 상태가 됐다.
할머니, 같이 빨면 안 된다니까?
나는 빨래를 나눠서 따로 한다.
할머니 사전에 따로 빨래는 없다. 할머니는 걸레부터 행주, 수건, 속옷, 이불을 모두 한꺼번에 돌렸다. 우리집 첫 번째 통돌이가 10년 넘게 제 의무를 다하다 장렬히 전사한 후, 보다 덩치가 큰 통돌이를 둘째로 들였다. 할머니는 한동안 삐까번쩍한 세탁기를 아주 흡족해했고 의욕적으로 세탁을 주문했다. 양말이며 베갯잇, 강아지옷, 츄리닝, 이불 등이 섬유유연제 향기를 풀풀 풍기며 함께 나왔다. 걸레에서도 향기가 났다. 나는 적당히 흐린 눈을 했다. 그래, 향기 나면 좋지 뭐. 이제 할머니는 빨래도 하지 못한다.
할머니, 일 보고 난 다음에는 손 씻어야 한다고!
밖에 나갈 땐 마스크 써야 돼, 할머니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나는 강박적으로 손을 씻는다.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신경을 안 쓸래도 그럴 수가 없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안심이 됐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손 씻는다고 하거나 다음에 씻겠다고 변명하지 않고 곧장 개수대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것도 적당히 주워 털어 먹이며 우릴 키웠다. 식사 전에, 외출 후에, 일 보고 나서 손을 꼭 씻어야 한다는 것, 밥을 먹고 나서는 양치를 해야 한다는 것, 목욕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 한다는 것 등이 모두 어색했다. 몸이 아프고, 기억력이 나빠지고, 자리에서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든 할머니에게는 반복학습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할머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다.
할머니 상태가 안 좋을 때 나의 잔소리는 더 히스테릭해진다. 지난 주말에는 일을 보고 휴지로 뒤처리하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리는 바람에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할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러 번 속이 무너져 내렸다. 나도 괴롭고 할머니도 괴로운 나날들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치매가 이런 식으로 할머니를 좀먹을까 봐 많이 두렵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는 할머니, 몸과 마음 이곳저곳에 균열이 생기는 치매환자와 함께 산다는 건 불면이 지속되는 이국의 열대야 같다. 날은 덥고 말은 안 통하고 잠도 못 자겠는 길고 긴 밤,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와 같이 살기에 나는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