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반 어린이들은 급식 후의 짧은 산책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산책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작은 생명들을 찾아 땅바닥을 마냥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우리 반 곤충애호가 모임.
시정이 바뀌며 안 그래도 모자란 쉬는 시간이 코로나로 인해 더 짧아졌다. 모둠활동이나 공동체 놀이도 금지다. 심지어 천천히 알아가며 또래관계를 맺어야 할 황금 같은 학기 초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채였다.
나는 거센 바람에 방향을 잃어버린 풍향계가 된 것 같았다.
그동안 교실 안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았다. 교사는 학생과 라포를 형성하고, 보호자와 친밀하게 소통하는 걸 미덕으로 삼았다. 모든 선생님에게 급우 간 친목도모는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좀 더 과장하면 학생들을 서로 붙여놓지 못해 안달이었다.
"친구와 떨어지세요! 거리 유지하세요!"
상황이 180도 바뀌자 교사인 나도, 당사자인 아이들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내 입으로 뱉으면서도 참 아이러니했다. 친구와 떨어지라니. 다른 때 같았으면 신고를 당했을 텐데.
상담을 해 보면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와서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답했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심경을 들을 때면 내 기분도 롤러코스터처럼 상승했다가 푹 꺼지는 곡선을 그렸다.
고민 끝에 어린이 회의를 해 보기로 했다. 주제는 코로나 시대에 친구를 얻는 방법. 낸시 칼슨의 유명한 그림책 '친구를 모두 잃어버리는 방법'을 잃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표결을 거쳐 네 가지 실천사항을 정했다.
친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친구에게 물어보기 친구를 도와주기 친구에게 먼저 말 걸기
사실 나는 효과를 기대하지 않았고 소득이 크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나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개미들에게 공격당하는 지렁이를 살려줬던 윤서와 은찬이가 시작이었다. 운동장 한켠 잔디 위에 너덜한 지렁이가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이튿 날 지렁이 소식을 들은 아이 몇 명이 합류했고, 다음은 메뚜기, 그다음은 개미였다.
어느샌가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티타임을 가지는 것마냥 곤충타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저께는 급식을 먹다가 유리문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서인이와 눈이 마주쳐 빵 터졌다.
"선생님 거의 다 드셨다아!" 소리친 서인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얼른 와 보라고 불러대는 통에 후다닥 잔반을 버리고 달려갔다.
오늘은 또 뭔가, 아이들이 아기새처럼 쭈그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더니 개미가 노린재를 옮기는 모습을 보느라 코가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노린재를 끌고가는 개미를 응원하느라 신이 나 있었고, 지원군이 필요하다며 근처의 개미들을 잡아댔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 "얼른 떨어져, 떨어져!" 훠이훠이 손을 흔들었더니 "에이선생님~ 떨어졌어요 벌써~" 넉살 좋게 대꾸한다. 쉬지 않고 쫑알쫑알 감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왠지 안심이 됐다.
억지로 몰아 대지 않아도, 어색하게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가깝게, 우리 반이 모두 무사히 올해를 보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