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일 간 나는 몇 권의 책을 읽고, TV에서 하는 설 특선 영화를 보고, 집 아닌 곳을 여행하며 맛없는 해물탕을 먹었다. 그동안 못 봐서 뜸해졌던 친구들을 조합해 식사를 하거나 부스스한 몰골로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심각한 투의 뉴스를 들었다. 물론 방향 바꿔 누워서 책을 뒤적거리거나 핸드폰을 툭툭대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어른이 돼도 방학은 방학이다. 시작할 때의 의욕이 조금 무색하지만 그렇다고 왕창 게으른 것도 아닌 날들이었다. 이런 방학이 의미가 있을까?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교사로서 어떤 영향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렵고 두렵다고 했더니.. 앞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자기가 생각할 때 교사의 영향력은 제로에 가깝다고."
"흐음..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요?"
"이미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이시기도 하고, 우리는 모르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
"근데 좀 슬프다. 제로라니..."
"우아하게 늙는 게 목표라고 하셨어.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안 쓰인대."
집합연수 첫날 여러 교사들이 섞여했던 토론에서 선배가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뜨끈한 칼국수 국물에 자연스럽게 섞여 나온 말이었다.
나는 오히려 내가 애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애들이 날 보고 뭘 배울까를 걱정했는데. 그리고 아직도 그게 신경 쓰이는데, 전혀 딴판인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스스로 내가 주는 영향은 없다고 말한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할 수 없었다. 선배도 당황스러웠고 곧 그 자리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덧붙였다.
모든 직업인들이 그럴까? 선생으로서 나는 늘 의미를 고민한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다고 달라질까? 내가 헛짓거리를 하는 걸까? 어디까지 해야 할까?...
어떤 건 남고 어떤 건 휩쓸려가겠지.
그렇지만 결코 영향력이 제로인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두 편의 영화.
위조지폐로 떠난 파리에서 어쩌다가 옷장에 실려 세계여행을 하게 된 인도 소년과 빈곤한 재정상태에 시달리면서도 사이비들을 찾아다니는 목사가 주인공이다. 극적 장치들이 그렇듯이 대책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근거 없는 용기와 계속되는 시도들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주인공 아니면 누가 이런 델 열어보겠어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각각의 장면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리고 내 시간들도 결국 어떤 결말을 맞겠지, 휘발하지 않고 어딘가에 가라앉아있겠지 하고 스스로 결론지어버렸다.
저 문 안쪽에 뭐가 있을지, 옷장에서 내린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도전하든 유예하든 회피하든 시간은 흐르고 선택은 남을 것이다. 사실 완전히 못 박을 수 있는 세계란 없다.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고, 실패가 성공이 되고, 성공이 실패가 되겠지.
가만히 눈을 감고 발가락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되새긴다. 폐가 크게 부풀었다가 갈비뼈와 함께 가라앉는다. 요즘에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보려 명상을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