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이 안 왔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빠르게 잡아채 결국 책상에 앉았다.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애들과 나는 안 만났어도 무방한 관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게 불면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안 만났어도 됐다.
그래, 내가 얘 선생이 아니어도 세상은 안 무너지는데.
담임이 되면 욕심이 생긴다.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의 스승'이 되고 싶다까지는 아니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알량하지만 교실 안에서 선생님 감투를 쓰고, 날 바라보는 눈들에 익숙해지면 더 욕심이 난다.
무서운 것은 이 욕심이 학생을 구원하겠다는 망상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밤 중에 쏟아지는 카톡에 구구절절 답장을 하고, 휴일에 울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때로는 가정 안의 문제로 보호자 상담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알아차렸지만. 내가 베푼 선의가 오해나 갈등,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이는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자랄 것이다.
선생은 구세주가 아니다. 자신 빼고 아무도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되 내가 싫고 힘든데 억지로 애쓸 필요는 없다. 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돌봐야 애들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났다는 건...
도합 12년, 학교 안에서 지나칠 수많은 인간, 그리고 인생에서 만날 수천, 수만의 어른 중 오직 나 한 사람을 담임으로 만났다는 건 꽤 대단하고 희소한 일이다. 이런 인연이라면 조금 더 소중히 여겨도 된다.
칠판의 졸라맨 초상화, 각종 응원 편지, 귀엽지만 별 쓸데는 없는 쪽지나 그림 따위가 발을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