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신 집에 누워있게 된 할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전화를 거는 곳마다 하나 같이 등급을 물었다.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기 위한 필수조건, 장기요양등급을 향한 험난한 여정의 서막이었다.
1. 장기요양등급이 뭔데요?
장기요양등급을 검색하면 판정기준, 심사, 혜택 같은 말들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혼자 생활할 수 없는 노인들과 그 가족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65세 미만의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 65세 이상의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대상이다.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후 심사를 통과하면 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등급이 있어야 요양시설(요양원, 요양병원)이나 요양서비스(방문목욕, 방문간호, 주간/야간 보호 등) 비용이 지원된다.
막상 닥치고 보니 할머니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있었나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일단은 집에 와 낮 동안이라도 할머니를 돌봐줄 간병인 분을 다시 수소문했다. 할머니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전혀 안 되는 상태였지만 등급이 없었다. 요양보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니 등급을 받기 전까지는 간병인을 쓰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계획한 대로 될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2. 할머니, 치매 약 드시고 있어요?
할머니의 보호자인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한 신청서류를 준비하고 진단서를 떼는 데에 모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병원이나 기관의 업무시간인 평일 9시-18시 동안에는 나도 일을 한다. 속이 탔다.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던 주간보호센터에 부탁해 서류를 내고, 진단서를 제출했다. 한 시름 돌렸다. 공단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심사가 밀려서 평소보다 결과 통지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등급을 받는 데 중요한 것은 할머니가 치매 약을 먹고 있는지였다. 치매라고 진단받았는지,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물어봤는데 나는 할머니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먹는 갖가지 약들 중 뇌 기능 항진제(치매 예방 약)가 떠올랐다. 직원이 "그럼 진단을 받지는 않은 거네요?"하고 확인했다.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가 뇌출혈로 치료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걸림돌이 됐다. 공단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상태가 나아질 수도 있으니 6개월 뒤에 신청하라고 했다.
'당장 할머니가 혼자서는 오도 가도 못 하는데..'
까마득하게 남아 있는 날짜가 당황스러웠다. 옆에서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사정을 설명하고, 할머니 상태가 호전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사의 말을 덧붙였다. 심사만이라도 받아봐야 했다.
직원은 일주일쯤 뒤에 할머니 집에 와 방문심사를 했다.
3.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노인의 치매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보호자에게 꼼꼼히 환자의 상태를 묻고, 집에 방문해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름은 기억하는지, 손자는 몇 명인지, 집 주소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 혼자 화장실에 가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지 등이 모두 평가 항목이 된다고 했다.
방문심사 항목들
상담을 했던 다른 요양센터에서는 등급을 받으려면 연기를 좀 해야 한다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방문심사 날만은 유독 멀쩡한 모습을 보여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사에 통과할 수 있도록 '요령'을 알려주겠다는 말에 순간 솔깃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요령대로 할 리 없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공단 직원은 할머니와 동생, 간병인을 만나고 돌아갔다. 그녀는 애써보긴 하겠지만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끝을 흐렸다.
3. 두 번의 기각
할머니는 장기요양등급 심사에서 탈락했다. 한 달 뒤, 다시 심사를 받았지만 역시 결과는 기각이었다.
"지금 할머니 증상으로 보면 등급을 받는 게 맞아요. 그런데 뇌출혈로 치료 받은 기록이 있어서... 이런 경우에는 급성기 심사로 분류됩니다. 6개월 뒤에도 할머니가 지금과 똑같은 상태라면 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죠. 4월 말에 입원하셨으니 10월 말에 다시 신청해 보세요."
치매를 앓는 노인에게는 그 곳이 어디든 사고다발지역이 되고, 매일이 위기일발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진료기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니 억울하긴 했지만 공단에 화를 내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정확한 심사를 위한 원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장 하루가 급한 가족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