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치매, 이전과 이후

이상한 나라의 돌봄일대기[09]

by 곰곰

전 세계를 덮친 바이러스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19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전염병을 피해 달려간 곳에는 할머니의 치매라는 또 다른 벽이 있었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전염병은 전방위적으로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던 일상과 멀어졌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숨 죽이고 집 안에 머물며 외출하지 않는 것이 권고사항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출처: 대전 MBC


치매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줬던 할머니를 점점 떠나보내고 있다. 바로 옆에 누워있어도 그녀는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활기차게 나들이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던 일상과 작별했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 그녀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본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한다. 익숙하다 못해 질려했던 집안을 처음 온 것처럼 찬찬히 뜯어본다.

치매 이후에, 또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할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처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안 죽어~"를 말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성격이었기에 중국 어디쯤에서 감기와 비슷한 병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할머니의 건망증과 헛소리를 단지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 들었다. 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불운한 누군가의 일이겠거니, 안타깝지만 걸린 사람만 불쌍하지, 여느 때처럼 다른 세상의 일일 줄 알고 있었다.

꾸물대는 사이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한국에서는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수차례 응급실을 오갔다. 코 앞까지 와서야 심각함을 알았다. 사람을 덮치는 이런 일들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전염병은 일상을 뒤집고, 치매는 일상을 흔들어댔다. 나 또한 할머니와 나의 일상을 담보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해야 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문장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전제부터 잘못됐다. 전염병이나 치매는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애초에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니 승패를 가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돌아보니 나는 혼자 싸우고 있었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뒤에 두고 쌩하니 앞서갔던 순간, 반복되는 투정에 화를 쏟아냈던 순간, 바보 같은 모습에 답답해 울던 순간들 속에서. 그녀가 아프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무너지는 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상대 없는 싸움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머니는 이제 나를 돌봐주던 사람에서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 됐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두가 이 지난한 병증이 그만 물러가길 바란다. 코로나든 치매든 매한가지다.

빈칸으로 남아있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이 병의 가장 지독한 증상 중 하나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기약 없는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다. 앞으로 누가 더 아플지, 왜 이렇게 됐는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나아질지 나빠질지 더듬대는 동안 술래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확실한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이 병을 아직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어린애처럼 내 손을 잡은 할머니는 얌전히 목욕을 한다. 나는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고, 이불을 빤다. 코로나와 치매를 짊어지고도 어떻게든 일상은 이어진다.


할머니를 재워놓고 동네를 걷다 낡은 의자를 발견했다. 둘이 걷던 길을 이제는 혼자 걷는다. 돌아봐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

할머니는 사는 동안 평생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맸고, 먹고 사느라 수백 번 앉았다가 일어섰고, 자식손자새끼들을 오래오래 무릎에 앉혔다가 종내엔 영영 주저앉아버렸다.

쓰임이 다하면 갈아치우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아, 그렇지만 아무도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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