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소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할머니가 바르작대는 병아리 같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얼굴은 누렇고, 팔은 잘 펴지 못한다. 다리에 힘이 없어 이동도 힘들고,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한다. 밥을 먹고는 하루 종일 잠을 잔다. 가끔씩은 눈을 깜빡이며 빈자리를 응시한다.
할머니는 조그맣고 약해졌다.
나의 돌봄 일대기 - 봄부터 여름까지
- 4월 말, 할머니는 계단에서 떨어져(추정) 응급실에 갔다. 외상성 경막하 출혈,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그리고 측두골의 골절. 머리뼈에 금이 가 피가 났고, 그게 뇌 안에 고여있다고 했다.
일주일 후, 할머니는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 5월 11일, 할머니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첫 번째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았다. 기각됐다.
평일에는 간병인을 부르고, 주말에는 나와 동생이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돌봤다. 열흘 정도 지나자 할머니는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정도까지 건강을 회복했다.
신청한 후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문자메시지
- 5월 25일, 연가를 냈다. 할머니를 동사무소에 데리고 가 재난지원금을 신청했다. 입원했던 대학병원에 가서 외래진료를 받았다. 한 시간 여를 기다려 만난 담당의사는 일단 상태가 괜찮은 것 같지만 2주 후에 CT촬영을 해 보자고 했다. 할머니는 전화를 못 하겠다고 우울해했다. 귀가 더 안 좋아지면서 전화를 받지도 못했다. 집에 CCTV를 설치했다. 휴대폰에는 위치추적 어플을 깔았다.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는 데 코피가 흘렀다.
- 6월 3일, 우려 속에 등교 개학을 했다.정신없이 일을 하고 금요일 퇴근해 곧장 할머니 집으로 갔다. 주말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했다. 낮 동안은 주간보호센터에 맡기고 밤에는 간병인 분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상태가 호전됐다. 배가 고팠는지 파스타와 볶음밥을 맛있게 드셨다.
- 6월 11일, 일하고 있는데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흥분한 상태로 집에 가겠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센터는 쉬기로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병인 분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도 없을 때, 할머니는 혼자 지하철을 탔다가 휴대폰과 지갑을 두고 왔다.
- 6월 21일, 집에 갔는데 집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혼자 대청소를 하다가 폭발해 동생에게 화를 냈다. 할머니를 설득해 제발 센터에 다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왔다.
- 6월 26일, 할머니 상태가 안 좋아졌다. 커피포트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아 화재가 날 뻔했고, 속옷에 용변 실수를 했다. 아무도 없는데 말을 걸고, 신발을 신고 집 안을 돌아다녔다.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다시 등급 신청을 했다. 토요일에는 갑자기 열이 오르고 두드러기가 났다. 할머니와 같이 밤을 꼬박 새웠다. 응급실에 다녀왔다.
센터 복지사님이 보낸 메세지
- 7월 7일, 두 번째 등급 심사 결과도 기각. 증상은 인정됐지만 뇌출혈로 치료받은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월요일에 할머니는 센터에 잘 다녀왔는데 그 날 저녁 또다시 두드러기가 재발했다. 가려움과 발열로 잠도 못 잘 지경이라 병원에 갔지만 열이 있어 진료가 거부됐다. 대학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 나오고 나서야 약을 타올 수 있었다.
- 7월 17일, 주간보호센터에서 할머니를 모시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등급은 유예됐고, 할머니는 계속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준비가 하나도 안된 상태로 누워 있거나 말도 없이 나가서 돌아다니는 할머니를 데려가기 위해 그들이 고생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침에 1시간씩 일종의 등교 준비(?)를 돕는 분을 따로 부르고 할머니를 설득해 센터에 누워계시기라도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싫어도 꾸역꾸역 나갔다. 동생은 할머니와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 7월 25일, 아침에 갔더니 할머니가 온몸에 대변을 묻힌 채로 멍하니 누워 천장만 보고 있었다. 베란다를 화장실로 착각한 것 같았다. 센터를 다시 쉬기로 했다. 직원은 이런 상태라면 요양시설로 모시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필요하면 적당한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할머니를 씻기고 이불을 빨고 집안을 락스와 세제로 박박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냄새가 코 끝을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웠다. 부축하지 않으면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불은 오줌으로 금방 축축해졌다. 걸레질을 하면서 한 번, 할머니를 씻기다가 두 번, 소리도 못 내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 7월 27일, 알람 없이 잠이 깼다. 밤 사이 젖은 기저귀를 갈고 할머니를 씻긴 다음 옷을 갈아입혔다. "추워, 추워"하고 그녀는 앓는 소리를 냈다. 며칠간 계속 잠을 못 잔 상태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쓰레기를 버리고 이불을 갈고 급하게 밥을 몇 술 떴다. 새벽 6시, 전주로 출근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할머니는 나가는 줄도 모르고 죽은 듯 자고 있었다.
- 8월 1일,악화된 할머니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다. CT촬영을 하고 MRI 검사도 했다. 의사는 95퍼센트 확률로 치매 증상일 거라고 다시 확인해줬다. 다행히 할머니 머릿속 고여있는 피의 양은 늘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관을 집어넣어 피를 빼내는 수술이 있으니 일정을 상의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는 치매와 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요양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힘닿는 데까지 할머니를 돌볼 생각이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때로는 그게 날 서글프게 한다. 나이 먹어 아프지 않고 편하게 죽는 것도 복이라고,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본다. 그녀에게서 나를 보고, 어린 시절의 그녀를 보고, 또 그녀의 어머니를 보기도 한다.
할머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그맣고 약해도 괜찮으니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