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직원이 된 이유
비행기가 너무 좋았다. 덩치 큰 쇳덩이가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도, 파란 하늘에서 비행운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도, 비행기가 날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크고 묵직한 매력이 있는 엔진 소리를 듣는 것도. 공항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고, 서울 시내를 다니는 공항 리무진만 보아도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비행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미국 교환학생 때 시애틀 근교에 위치한 보잉 팩토리에 가기도 했다. 도색이 이루어지기 전인 맨 몸의 항공기를 처음 본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항공관제 유튜브를 찾아보는 것도 고등학교 시험기간의 유일한 낙이었다. 가끔씩 김포공항 전망대에 놀러 가 비행기를 구경하고 어느 항공사 비행기인지 알아맞추는 것도 좋아했다.
대학교 졸업이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고시 공부나 로스쿨 공부를 해야 하나 금융계에서 일을 할까. 그러나 졸업 직전의 여름 방학 때 했던 외국계 증권사 인턴은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 하라면 군말 없이 하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탓에 증권사 일도 하라면 하겠지만, 신나거나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다른 산업군의 회사와는 다르게 항공사 자소서를 쓰면서 깨달았다. 자소서에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내가 이걸 진짜 좋아하는구나. 자소서 쓰면서 엄마한테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냐고 큰 소리 첬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은 일을 하며 참 행복하다.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으로서 회사 소식을, 항공 업계 소식을 보다 더 잘 알게 되는 탓에 매일 나에게 참조로 온 수백 통의 메일을 굳이 일일이 살펴본다. 단순히 재미있어서다. 첫 3년 정도는 인천 공항에서 현장 근무를 하게 되었다. 바쁘게 굴러가는 현장 근무의 매력은 일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때로는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지만 반대로 뿌듯하고 감동받는 순간도 있다. 지나고 보면 다 추억으로 남겠지.
얼마 전에 직원 티켓으로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탑승권을 내미는 순간 승무원이 갑자기 나를 친근하게 불렀다. 알고 보니 승무원을 꿈꾸던 고3 같은 반 친구였다. 친구가 나에게 “우리 둘 다 꿈을 이뤘구나! 너 고등학교 때 항공사 들어가고 싶다고 그랬었는데”라는 말을 하자마자 다시금 깨달았다. 아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짜증 나는 동료,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를 하는 상사, 업무 스트레스,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회사와 업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어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