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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03. 2019

우리는 ‘남은’ 돈과 시간을 어떻게 낭비하는가

여분의 포기, 삶을 낭비하는 방법

젊은 나이에 삶을 마치는 사람이 있다. 안타깝게도 서른도 안 된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 2명이 먼저 떠났다. 연세도 모르는 친척이나, 나이 지긋한 조부모의 죽음만을 경험한 내게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은, 생각없이 살던 삶에 큰 감회를 가져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명 중 한 친구는 스스로 생을 마쳤다. 이유 불문하고 우리가 사는 한국이란 나라엔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일엔 반대한다. 10대 20대 젊은이들은 왜 삶을 끝낼까. 삶이 24시간의 하루라면 아직 오전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죽음으로 시작한 글이지만 자살률이나 그 심리적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으련다. 이 글의 무게감은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다. 삶이라는 큰 주제로 시작했지만 잘게 쪼개보려고 한다. 큰 목표가 있다면 계획은 잘게 잘게 쪼개서 성취해야 한다.


이 글은 삶에서 시작해 하루로, 거스름돈 200원에서 경제적 자유까지 나아간다. ‘성공하기 위해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작은 돈부터 소중히 여겨라’ 라는 말을 들어도 행동이 변하지 않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


앞서 20대 초반에 삶을 포기하는 시점은 하루의 오전 6시도 되지 않는다고 비유했다. 삶은 곧 시간으로 측정된다.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죽는다.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명력을 소진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점에서 전혀 동떨어진 비유는 아니다. 비약이 아니라 단순화로 이해해보자.


10대 20대, 삶을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며 의미를 도저히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자살하지 말라는 이유로 “인생을 하루로 친다면 아직 오전 6시도 안 됐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위로하고자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진심은 아닐 것이다. 산술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80세 노인에게는 의미가 없는 말이다.

 

바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과거 때문에 미래를 버리는 판단을 ‘여분의 포기’라고 부르자.
여분의 포기란 과거 때문에 현재의 시작을 미래로 늦추는 일이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무게를 덜어보자. 대학교에 입학한 한 학생은 2학년 때까지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의 성적이 형편없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3~4학년 때도 공부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3학년때 수능 공부를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더욱 가볍게 해보자. 현재 글을 쓰는 시점은 2019년 5월 중순이다. 한 해의 절반인 6월까지 놀았다고 해서 남은 6개월을 낭비하지 않아도 괜찮다. “6월까지 놀아버렸네, 남은 하반기도 놀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는 12개월이고, 1년은 12개월로 이루어져 있으니,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남은 시간도 허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이유는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흘러간 시간이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지만, 오직 현재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키자. 과거를 날려보내자. 과거의 문을 닫아버리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창백한 범죄자’라고 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망각하고 과거 잘못된 행위와 동일시하며 자학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의 잘못에 괴로워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거나 수용하는 사람을 ‘강한 자’라고 했다.


얼추 의미를 이해했다면 더 가볍게 해보자. 가볍지만 가장 가깝게 다가온다. 이번엔 하루다. 우리는 매일 공짜로 주어지는 하루를 경솔하게 여겨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곤 한다. 정신을 차리니 오후 9시다. 가장 쉽게 드는 생각은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하자’다.


이러한 생각은 하루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시간을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다. 짧고 작게나마 인생의 한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여분의 포기다. 과거가 현재를 절대 방해하지 못하게 하자. 특히 현재의 시작이 늦춰지지 않게 하자. 옛날 사람들은 단지 ‘시작’하는 것, 0%에서 1%로 가는 것에 전체의 50%의 의미를 주었다. 여전히 ‘시작은 반이다.’

삶은 시간이다. 수명은 100년이고 1년은 12개월이다. 1개월은 30일, 하루는 24시간이다. 우리가 X시 45분일 때 15분 후로 시작을 미뤄선 안 된다. X시 17분일 때, ‘20분부터 시작하겠다’며 3분을 허비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365일은 1년을 이루기 때문이다.


시간의 규모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이유는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크고 작은 것의 유사성을 보자. 1시간을 2번의 30분으로 인지하는 사람과 6번의 10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24시간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일주일이 7일로 구성돼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돈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엔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800원 짜리 실론티 캔을 꺼내 1000원 짜리 지폐를 냈다. 계산대 옆에 200원으로 살 수 있는 젤리와 사탕이 있다. 100원짜리 동전 2개를 남기기 싫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었다. (그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지만 200원 마저 소비할 이유는 없었다.


8,000원을 썼다고 해서 2,000원을 마저 쓸 이유가 없다. 98만원 짜리 노트북을 샀다고 해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을 2만원짜리 악세서리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 시간에서 보았듯이 돈에서도 ‘여분의 포기’는 좋지 않다. 남은 돈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200원일 뿐이잖아? 2000원일 뿐이잖아? 98만원을 썼는데 단지 2만원일 뿐이잖아?’ 라는 생각이 든다면 앞서 길게 설명한 ‘시간’을 생각해보자. 오후 9시에 ‘지금부터 해도 3시간 뿐이잖아, 내일부터 하자.’ 100만원 중 98만원을 썼다고 2만원이 가볍게 느껴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12월 1일에 “올해는 늦었으니 내년부터 하자”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잡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돈에 대한 통찰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김진명 소설가의 <카지노>에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여분의 포기’를 볼 수 있다. 소설에서 한 청년은 여성의 500달러를 1만 달러로 만들기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6,000달러가 있으니 합해서 6,500달러에요.
6,500달러란 7,000달러에 가까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 100달러라도 더 만들어야 해요.
6,500은 6,000달러보다 안전하지만 500달러로 끝이 맞추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언제나 자투리가 중요한 법이에요. 그래서 프로는 돈의 끝을 맞추지 않습니다.
5,000달러란 금액은 위험합니다.
인간의 의식이란 정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6,000달러라는 개념은
5,000달러나 7,000달러와 맞추어지게 마련입니다.
내게 잔돈이 60달러가 있어요.
(제게 40달러가 있어요.)
잘 됐네요. 이리 주세요.
이것은 이제 7,000달러나 다름없어요.
7,000달러란 1만 달러의 영역에 속하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시간과 돈을 구분해 ‘여분의 포기’를 설명했다. 그런데 현실은 시간과 돈을 함께 다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혼합되면 더욱 복잡해서 인간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5만원 짜리 물품이 1만원에 판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옆 동네로 간다. 80% 할인이라니! 하지만 막상 자동차나 집을 살 때, 은행 이자를 받을 때, 우리는 4만원의 차익 때문에 옆동네까지 가지 않는다. 시간과 돈을 함께 다루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자.


‘여분의 포기’를 주의하자. 과거가 현재의 ‘시작’을 막지 못하게 하자. ‘다음 달부터’ ‘다음주부터’ ‘내일부터’ 라는 생각은 단념하자. 우리는 절대 내일을 만날 수 없다.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과거를 수정하지 못하며 내일은 만날 수도 없고 마주하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정각부터 시작하지 말자. 3분을 버리지 말자. 시작을 3분 후로 늦추지 말자. 시작을 3분 연기하면 20분 후로 늦추고 싶다. 끝자리를 맞추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돈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200원을 낭비하지 말자. 2,000원을 낭비하지 말자. 경제적 자유를 향한 출발을 늦추지 말자. 과거의 가난함이 현재의 가난함으로 이어지게 내버려두지 말자. 부유해지는 시작을 늦추지 말자.


지금 당장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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