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과거의 나
마이너스에서 제로 그리고 다시 시작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으슬으슬 서늘함에 재채기가 절로 나오는 가을이 왔다.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톡 알림에서 봤다며 생일 축하 인사 메시지였다. 아마도 서류상 생일이 자동으로 반영되어 톡 친구 알림에서 확인한 듯하다.
한동안 소원해진 친구였으나 반가움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일들로 마지막 통화했던 2019년 이후 각자 큰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식 날까지 잡아놨다 파혼했고 친구는 아이를 낳아 벌써 4살이라고 했다. 장녀와 막내아들을 가진 오누이의 엄마가 됐다더라. 신기했다.
내가 비혼을 외치며 룰루랄라 놀면서 보내는 동안, 친구는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했다니.. 같은 나이 또래 친구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기에 다시 생각해도 잘 한 결정이었다고 대답해줬다. 만약 2019년 6월에 예정대로 결혼했다면 나 역시 그 사이 아이를 낳아 육아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비혼을 선택하고 혼자의 삶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받아들이게 된 지금, 난 행복하다. 그것도 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인생의 동반자인 배우자, 여전히 진득한 미련이 남는 내 아이(내 피와 살로 이어진 존재)에 대해 가뭄에 콩 나듯 아쉬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적지근한 정도로 식고 있다. 역시 결론은 지금 혼자인 내가 좋다.
어쩌면 여전히 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스스로 돌보기도 벅찬, 덜 자란 어른 아이여서 일거다.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자기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준비가 안 된 것뿐만 아니라 겁쟁이라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조차 피하기 일수였다. 상대를 믿지 못했고 호의를 의심했다. 작은 상처에도 미리 겁부터 집어먹고 도망치기 바빴고 자기 상처만 아프고 중요해서 주변을 살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연애가 시작조차 힘들었다.
누군가와 잘 지내려면 나와 다른 존재에 적응하고 어울리기 위해 어느 정도 희생과 헌신이라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당연한 이치를 머리로만 알 뿐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겉으로만 조금 배려하는 척할 뿐이다. 진심은 주고받기(give&take)는 커녕 내가 더 많이 받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친구관계완 달리 왜 유독 연애 상대에게 더 기대하고 불합리하게 대했을까.
가장 큰 문제는 경험치의 부재로 막연한 환상과 과잉 기대치라는 높은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니 애초에 시작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눈만 높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러니 남자 보는 눈은 없고 평범한 사람들은 나의 거부에 다 떨어져 나가기 일수다. 그러다 끝까지 남아있는 범상치 못한 남자와 짧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손해 보기 싫고 안 그런 척 하지만 알게 모르게 재고 따지면서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았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균형이 맞아진다는 것을 깨치지 못한 것부터 이미 글렀다. 자기 객관화는커녕 비대해진 자의식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 아빠의 바람 때문이어서 처음부터 남자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잘못된 선입관이 고정되었을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어색하고 받기도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미묘한 심리 변화와 감정적 교류, 낯선 존재와 맞춰가는 것 자체가 귀찮게 느껴졌다.
불신은 기대를 낮추는 동시에 진심으로 상대와 그 관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금세 식어버릴 것에 애정을 쏟을 수 없다 생각한 건지도.
어쩌면 아무것도 감내하기 싫었나 보다.
가마니처럼 아예 혼자 내버려 두길 바라는 게 정상인가? 확신이 없고 뜨겁지 않은 연애는 시작도 끝도 미지근한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20여 년을 사회생활을 하며 일하고 돈 벌고 친구 사귀고 여행이나 하고 싶은 취미생활과 공부도 마음껏 다 했다. 틈이 나면 데이트나 연애도 여러 번 했다. 시도는 말이다.
치열하게 살며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연애가 잘 될 수가 있나. 마음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었으니 짧고 가벼운 무의미한 만남들 일 수밖에.
그러니 현재 내게 남아있는 건? 없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원가족 외에는 아무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른 건 어떤가.
돈도 못 모았고 자산이라 할 만한 것들은 아예 갖지 못했다. 학창 시절 공부 좀 했다고 잘 될 줄만 알았지. 직업적 성취, 집, 차, 인맥, 명예, 경제적 여유, 무엇 하나 내 손에 남은 게 없다. 빈털터리 허깨비가 따로 없다.
아니, 정확히는 있었다가 없어진 것들이 많다. 심지어 가진 걸 지키는 것도 못했다. 멍청하고 어리석게!
분명 손에 쥐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려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알량한 자존심뿐.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 등 여러 가지 여건이 시작부터 바닥이긴 했다. 그럼에도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았다. 욕심부리지 않고 편법에 눈 돌리지 않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에 매진한 것만큼은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해주고 싶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건만 뭐가 문제였을까?
경제적 의사결정 시 잘못된 판단이 결정적으로 몇 번 있었고 제대로 된 경제관념과 재테크 지식의 부재로 돈을 모으거나 불릴 생각도 의지도 부족했던 것이 사단이었다. 버는 대로 써버리고 그나마 모은 것도 늘 필요한 누군가에게 사라져 버렸다.
분명 기회는 많았으나 다 날려버린 셈이다. 굴러온 복도 제 발로 걷어차길 여러 번.
게다가 빚을 상속(?) 해 준 엄마 덕분에 오랜 시간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했다. 억울했지만 살다 보면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악재까지 더해져서 상황이 좋아질 수 없었다.
물론 지나고 보니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매번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길 여러 번이었으니 뒤늦게 후회하고도 나아지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막막한 시기를 보냈다. 한동안 끝없이 떨어지는 느낌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에만 몰두했던 몇 년간 다행히 변화가 시작됐고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넘치는 잡념은 지우고 허한 마음을 채우려 책을 읽었다. 속내를 거침없이 토해내고 회피하던 모든 것들을 직면하면서 치유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감추고 가려져 있던 진짜 나를 차분히 들여다봤다.
중년이 되어 조급함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인생의 굴곡들을 롤러코스터 타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 탓, 환경 탓, 세상 탓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의 전환과 관점의 변화에 따라 넓어진 시야를 갖게 됐고 자신을 바로보기 시작했더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이너스의 삶에서 드디어 제로가 되었다.
다행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큰 걸림돌을 치워냈다. 남은 빚을 청산하고도 여전히 자잘한 문제들이 얼마간 남아있으나 이제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어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졌다. 눈앞을 가리던 답답한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어둡고 막막한 길을 헤매다가 빛이 비치는 길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다 놓아버리고 나조차 내팽개치고 무책임해지고 싶었던 순간들을 무사히 지났다.
매일이 똑같다고 생각했으나 미미해 보이던 변화가 느리고 더딘 대신 차곡차곡 쌓였다.
어두운 터널 끝에 밝은 바깥으로 빠져나와 드디어 마음밭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퇴 후 인생 2막 시작)처럼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 60대에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 그에 비하면 난 젊은 편이 아닌가.
70대의 엄마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즐겁게 행복해지려고 애쓰고 있는데 40대의 딸이 손 놓고 있으면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래, 서두르거나 조바심 내지 말자.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내 앞에 주어진 당장의 과제들에 우선 집중하자. 그것부터 차분히 해결해 나가자. 그리고 하나씩 시작하는 거다. 내 앞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해나가면서 해야 할 일들과 목표한 바를 차례로 정복해 나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고 발전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어낼 것이다.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걱정은 적당히 갈무리하고 실행만이 살 길이다.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 내일로 미루는 바보 같은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자. 내일로 미루며 기다린다면 시작할 수 있는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당장 오늘부터 무얼 할지 고민은 짧게 하되 어떤 선택과 결정이든 빠른 실행만이 정답이다. 틀리면 고치고 또 고쳐서 나아가면 된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계속한다면 경험치가 쌓이고 지혜가 쌓일 것이고 목표를 이루는 건 시간문제다.
당장 도서관부터 가자! 온라인 강의를 듣고 관련 서적을 탐독해서 계획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하우와 방법을 찾아 하나씩 적용하고 실행하자.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자. 그러면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플러스의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