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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색 Apr 22. 2022

슬기로운 격리생활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후 오미크론에 걸렸다. 그 와중에 첫 책이 나왔다

사막과 여인, 출처: Pexel 무료 이미지

주변에 안 걸린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걸려버렸다.


백신을 3차까지 전부 접종 완료했고 개인위생 철저히 한 결과 지난 2년간 분기별로 걸리던 감기조차 한 번 걸리지 않았건만. 방심해서가 아니다. 엄마가 먼저 확진됐고 밀착 접촉자라 바로 보건소서 PCR 검사받자 다음날 오전 9시 확진 문자 받고 즉시 재택치료와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미크론이 휩쓸었던 3월 말 '7일간의 격리생활(오미크론 적응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확진 1일 차*

전 날 밤부터 슬슬 조짐이 있더니 아침에 일어나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인후통과 편도가 부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 목감기에 걸렸을 때와 비슷했다.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겁먹고 걱정한 게 우스울 만큼 증상이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엄마도 나도 일반 감기와 비슷한 수준이라 이대로 큰 변수 없이 나아가길 바랄 뿐.


한 가지 문제는 엄마와 하루 차이로 확진, 격리되었기에 온라인으로 약 처방을 받으려면 (확진-역학조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정보 이전 등) 행정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다행히 엄마는 동네병원서 검사받고 확진받아 약 처방을 받아오셨기에 빠른 처방과 투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증상이나 컨디션이 금세 호전되었다.


내 경우 미리 사 두었던 상비약 중에 종합감기약을 먹었더니 약효가 도는지 잠이 쏟아졌다. 겉옷을 벗을 새도 없이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저녁때였다.


집에 환자만 둘이다 보니 식사는 레토르트 식품 육개장을 데워 나눠먹었다. 약 먹고 평소처럼 산책 삼아 집 앞 공원에 나가려다 '격리치료'가 떠올랐다. 진짜 격리되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잠시 멍해있다가 괜히 사람들 생각이 났다. 친구랑 친한 언니, 동생, 이모 등 최근에 근황을 전했던 사람들과 전화나 톡으로 확진 소식도 미리 알리고 겸사겸사 수다도 좀 떨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현재 상태는 살짝 기침이 나고 가래가 생겨 불편할 뿐. 다행히 열은 없고 근육통이나 목 통증은 아침보다 덜해졌다.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는 수밖에.


*확진 2일 차*

새벽 6시 눈이 떠졌다. 몸 상태가 악화된 게 느껴졌다. 일단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8시에 일어나니 목도 아프고 관절 마디가 아파오는 등 증상이 더 심해졌다. 체온이 38도가 넘어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죽을 먹고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을 먹었다. 과거 장염에 걸렸던 때처럼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져 따뜻한 찜질팩을 배에 올려두었더니 잠이 솔솔 왔다.


땀을 흘려가며 푹 잤더니 점심때 깨어났을 때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눅눅해진 잠옷을 벗고 샤워하고 나니 목 통증, 기침 가래 외에는 다른 증상은 사라졌다. 집에 미리 사둔 편의점 상비약들 덕을 보고 있다.


오후에 전화 진료를 받고 드디어 약 처방까지 받았다. 배송해준다고 해서 기다렸으나 밤 10시가 넘어서도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배송이 많이 밀려있나 보다. 목이 많이 아프고 계속 식은땀이 난다. 다행히 열은 정상 체온 범주에 있어 걱정은 안 되는데 밤이 되자 점점 기침이 심해지고 날카로운 통증에 괴로웠다.


*확진 3일 차*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목 아픈 정도가 누구 말처럼 목에 칼 박힌 듯 찢어지는 통증이었다. 물론 진짜 칼에 찔려본 적은 없지만 암튼 엄청 고통스러웠다. 인후통이 심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여태까지 중 가장 심하다.


화장실서 초록색도 연두색도 아닌 희한한 색깔의 가래를 한 차례 뱉고 신기하면서 덜컥 겁이 났다. 중병으로 발전하나 싶어 잠시 움찔했으나 실제론 답답한 목과 가슴이 조금 시원해진 느낌에 진정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맑은 콧물이 흐르던 게 이젠 한쪽 코가 꽉 막혀 숨쉬기가 불편하다.


상비약을 거의 다 먹어 걱정하던 차에 드디어 처방약 5일 치를 받았다. 격리 해제될 때까지 충분히 먹을 수 있어 안심이 됐다.


'자가격리'는 남 일이라 생각했다. 집순이라 셀프 격리된 적은 있지만 진짜 코로나에 걸릴 줄이야. 막상 격리 상태가 되니 당장 먹을 음식, 약, 생필품 등이 부족해질까 봐 걱정이 앞섰다. 고작 7일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은 한 달 동안 냉장고만 파먹어도 버틸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당장 김치와 라면 몇 개가 전부였다. 모녀가 매 끼니를 나물류의 신선식품 위주로 먹다 보니 흔한 저장 음식이나 레토르트 식품도 쟁여두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매번 배달시켜 먹기도 여의치 않던 차에 엄마 친구분들이 삼계탕 등 생각지도 못한 보양식과 식재료들을 사식 넣듯 전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전화상담&약 처방이 비대면으로 가능한 데다 약도 배달해 주는 상황이라 밖에 나갈 수 없는 답답함 외에는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많은 확진자와 격리자 수를 보며 다 같이 아픈 것에 이유 없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뭔가 피할 수 없지만 하기 싫은 숙제를 미루고 미루다 막상 해보니 별 거 없었다는 느낌이랄까.


밥 먹고 약 먹고 약기운에 잠들고를 반복하다 보니 심심함을 느낄 새도 없다. 약만 먹으면 졸려서 잠을 참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신생아 아기처럼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내내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저녁 먹을 때쯤 목 아픈 것도 많이 나았고 기침이나 몸살 기운도 가라앉았다. 여전히 콧물과 가래, 가끔씩 가슴이 갑갑해져 거친 기침이 터져 나오긴 해도 증세가 완화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녁 먹고 약 먹고 나니 슬슬 다시 졸리기 시작했다. 브런치 매거진과 북 발행 마감 직전이라 마무리할 일이 남아있어서 맘먹고 버티다 보니 새벽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확진 4일 차*

새벽 2시까지 브런치 매거진 제목을 정하고 윤곽을 잡고 지금까지 써온 글을 정리, 구분했다. 오미크론에 함락되어 계속 미루던 나와의 약속(브런치 북 완성 및 매거진 정리 등)을 지키고 싶었다. 오미크론과 싸우느라 컨디션 난조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 매거진과 북 발행을 위해 제목, 소개글 등 작성을 마무리 지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일단 완성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까지 깨어있었고 그게 사단이 되었다.


자려고 누었는데 숨 쉬기가 불편하고 계속 기침과 가래가 나와서 수시로 화장실을 오가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기침이 심해지니 목 통증도 점점 날카롭게 느껴졌다. 잠도 못 자고 괴로운 와중에 4시가 넘어서까지 계속 깨어있는 게 죽을 거 같았다.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


새벽 5시에 겨우 잠이 들어 9시에 깨어났을 땐 다행히 지난 새벽에 느꼈던 통증과 격렬한 기침이 얼추 가라앉았다. 땀 흘려서 축축한 몸을 샤워로 씻어내니 살만해졌다. 아침으로 엄마가 끓여준 누룽지를 먹고 나서 약 먹고 잤다. 다행히도 엄마는 평소의 컨디션을 찾았다고 해서 한시름 놨다.


1시가 넘어 깨어나 기운 없는데 입맛도 없어서 우유 한 잔 먹고 점심 약 먹으니 또 졸리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더니 졸려서 당장 누우라 명령하는 몸의 외침을 못 들을 척하며 우여곡절 끝에 브런치 북 두 권을 발행했다.

에세이집 [느림보면 어때 가는 중이야]와 시집 [깨지지 않는 한 조각] 내 생애 첫 책들이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이참에 공모전에도 지원했다.(제목 한 차례 수정함)

결과는 뭐 당연히 안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조금 더 퇴고를 했어야 했나, 제목도 더 멋진 게 없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아쉽지 않은 게 없다. 볼 때마다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어 부끄럽고 속상하다.


그럼에도 그날은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온라인이지만 브런치를 통해, 블로그에 써 내려간 나의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나부터 스스로를 각박하게 평하기보다 토닥토닥 고생했다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한 달 만에 첫 책이 나왔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건강 회복이 먼저다.


*확진 5일 차*

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약은 계속 먹고 있다. 목마름 때문에 하루에 거의 2리터 이상 물을 마시고 있다. 여전히 먹고 약 먹고 자고의 반복이지만 조금씩 깨어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


*확진 6일 차*

무사히 재택치료와 격리가 끝나간다. 이제 새벽 0시가 되면 격리 해제다. 증상은 약간의 코 마름, 목마름 정도. 소화기능이 떨어져 있던 것도 한결 나아졌다. 특별한 위기 없이 무사히 나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이제 낮잠 자는 시간이 줄었다. 아니 예전처럼 거의 자지 않게 되어 뭔가 생산적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코인 관련 투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재테크에 영 관심도 소질도 없는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남아도니 딴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확진 7일 차*

새벽 0시를 기준으로 재택치료 및 격리에 대해 공식적으로 해제됐다. 물론 아직도 목마름이랑 가래가 있어서 완전하게 나았다고 할 순 없지만. 유의미한 증상은 대부분 사라졌다. 순식간에 잠들 만큼 쏟아지던 졸음 증상 . 탈없이 잘 회복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내 최애 공간인 집 앞 공원에 나가고 산책을 하고 동네 빵집과 편의점에 들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에 무한한 감사를.


그 이후 거의 2주 가까이 코로나 후유증을 겪었다. 아마도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이미 코로나에 걸렸다가 무사히 회복했거나 지금 투병 중이거나 아직 걸리지 않은 슈퍼 항체의 소유자들도 있을 것이다. 오미크론 이후에도 변이들은 계속 생겨나고 또 재감염될 여지도 있다 하니 완전한 자유(?)가 오더라도 개인위생 잘 챙기시길 바란다.


풍토병으로 자리 잡기까지 아직 멀었다고는 하나 확실한 건 지난 2년 동안 인간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코로나도 결국 인간과 적응해서 함께 살아가야 하니 병증치명률도 낮아졌다. 인간들 또한 전염병에 대항할 다양한 무기들로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모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란다. 그리고 부족한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복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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