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장과의 만남

K는 키가크고 덩치도크고 마음도 크다

by 시쓰남

25년 11월 07일 오전 07시 00분


어두운 아침이었다. 그래서 날씨가 흐리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더 누워 있었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두울 거란 내 생각과는 반대로 맑은 아침이다. 무슨 생각으로 어둡다고 생각했을까? 늦게 일어나기 위해 이런 핑계를 만들고 있는 내가 참 부지런하다.


어제는 오랜만에 선배 JH를 만나고 왔다. 거의 사석에서는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옛이야기를 나누고 살아온 근황도 이야기하며 그동안 만나지 못해 몰랐던 삶의 궤적들을 업데이트했다. 형님네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설레고 평소 같았으면 하지 못했을 말을 했다. “이력서 한 부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도 이래 변해가는가 보다. 나 스스로도 놀랬다. 내가 저런 말을 오랜만에 뵙는 형님 앞에서 스스럼없이 하다니. 오늘은 이력서 업데이트 해서 보내 보려고 한다. 다시 가슴 떨리는 물류쟁이의 일을 할 수 있을까?


어제는 나팔이 이야기를 하며 나의 반려친구를 소개했다. 좋은 단어를 가져와 반려친구이지 혼자 알아서 다들 잘 크는 친구들이다. 난 그저 옆에서 잘 자라는 기도를 하며 물이 부족하지 않게 채우는 일만 할 뿐. 올해 겨울이 오기 전 나팔이가 힘을 내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군산에 다녀오면서 J(옥) 소개를 잠깐 했다. 오늘은 J 소개할 때 잠시 통화를 같이 했던 K사장을 소개하겠다.

K사장은 언제나 그렇듯 내가 붙인 호칭인데, 가장 최근에 난 K를 K사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이도 먹고 예전 별명을 부르기엔 어감이 좋지 않아 K사장으로 바꿨다. 괜히 ‘사장’이란 호칭을 붙이니 길거리에서 통화나 또는 사무실에서 통화를 하게 될 때 “어, K사장”이러니 나도 마치 정말 ‘사장’ 친구가 있는 것 같고 덩달아 높은 자리 있는 사람 같아서 좋았다.

K사장과는 고2 때 만났다.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땐 서로 몰랐고 2학년 8반 지구과학반에서 우린 처음 조우했다. 어찌하다 보니 짝을 같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정을 쌓고 중간에 질투도 쌓았다. 둘이 성적이 비슷비슷해서 항시 성적으로 비교를 했고, 내가 조금이라도 K사장보다 후순위로 밀리면 질투가 나고 까칠하게 대했다. 이런 선의의 경쟁(?)은 주말 농구게임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K사장은 키가 나보다 5센티 이상은 컸고, 항시 상대편 선수였다. 골문을 지키고 있는 센터 포지션을 담당했는데, 농구를 할 때마다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K사장과 나는 슬램덩크의 명언처럼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를 맹신하며 경기에 임했다. 매번 골 밑에서 부딪혔고, 모의고사 성적이 K사장보다 떨어진 경우는 더욱 거칠게 경기를 했던 거 같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 보려는 나의 승부욕이 지나치게 발동한 게 아닌가 싶다. K사장과는 고 3학년때도 같은 반이 되어 수능을 준비했다. 그때도 2학년때와 비슷하게 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생활을 했는데. 가끔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2~3학년 때 이야기를 하면 K사장의 반응이 나와는 달랐다. 나만 K사장을 그렇게 인식하고 혼자 행동했던 거다. K는 나와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만의 혼자 하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날 경쟁자로 의식하고 대하는 줄 알았던 K가 날 경쟁자 축에도 넣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충격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연거푸 소주만 들이켰다.

수능을 마치고 각자의 진로가 정해지면서 나의 질투는 조금 사그라들었던 거 같다. 기존보다 좀 더 편하게 K를 대할 수 있었는데, 이제 20살도 되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가끔 모일 때면 예전처럼 농구를 했다. K는 여전히 상대편 센터였고, 게임은 여전히 거칠었다.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건 내기(점심 쏘기 또는 커피 쏘기)를 걸었고 우리 모두 진심으로 경기를 임했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이렇게 종종 모여 학교에서 농구를 했다. 결혼하고도 명절 즈음 만났을 때까지 농구를 했다. 그 농구공은 J쌤에게 맡겨 놨는데 잘 있는지 모르겠다. 농구하려고 단체로 마트 가서 구매한 후로 그때 한번 하고 아직까지 사용을 않고 있다. “J쌤 농구공 잘 있지?” 이름이 호명되었으니 내일은 J쌤 소개를 해야겠다.

K사장은 장남이었다. 밑으로 남동생이 있었고, 그제 소개한 J(옥)과 같이 우리 친구들 사이에 유일하게 남동생이 있던 친구였다. 다른 동생이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여동생이 있었다. 가끔 우리가 단체로 K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밤늦게 가방을 메고 들어오던 고등학생 시절 K의 동생 뒷모습이 기억난다.

K사장은 현재 안산에서 자리를 잡고 지내고 있다. 유명한 제조업 회사를 다녀서 가끔 드라마를 보면 후원사 이름에 나오는 회사여서, 그 브랜드를 볼 때면 K사장을 떠 올리곤 했다. 강남역에 서울 신사옥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K가 참여했을 때는 서울에서 그것도 강남의 한복판에서 만나기도 했다. 나는 시골쥐, K는 서울쥐로. K는 나에게 맛있는 점심과 좀 더 특별한 스타벅스에 데리고 가 커피를 사주었다. 그러면서 면접의 팁을 전수해 주었고, 그 비법을 써먹은 나는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때 그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K사장집에서 몇 달간 머물며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다른 회사 합격 소식도 함께 접해서 서울행은 포기하고 부산에 남기로 했다. 그때 K사장의 팁은 너무나 좋아서 수도권에 면접이 있으면 꼭 써먹는다.


K는 키가 나보다 크고 덩치도 크다. 하지만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포악하지도 않고 조용조용했으며 착하다. 위에서 잠깐 소개도 했지만 이랬으니 내가 2학년 때 단체 미팅에도 데리고 간 게 아닌가 한다. 그때 그 미팅의 그녀와 잘 되었더라면 난 K사장에게 두고두고 술을 얻어먹고 있었을 텐데. 그때 미팅 친구들이 하나같이 커플이 되지 못한 게 아쉽다.

K사장을 생각하면 나의 어린 시절 질투로 힘들게 했던 시간이 떠올라 미안함 마음이 든다. 혼자만의 라이벌을 만들어 너를 미워도 하고 싫어도 했는데, 너의 너그러운 품격으로 나를 배척하지 않고 안아 준 것에 감사하다. 이런 내가 가끔 안부를 묻고 우연한 기회가 되어 너를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또한 감사하다. 불쑥 부산에 내려와 저녁 먹고 먼 길을 다시 올라가는 너의 이벤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 둘 다 몸들이 많이 망가져서 20대와 같은 힘과 체력을 과시할 수 없지만, 우리 다음에 애들이랑 다 같이 농구 한판 하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다음에 J(옥)과 다 같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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