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의 인연

아침의 영광

by 시쓰남

25년 11월 06일 오전 07시 08분


고구마를 심겠다고 오래된 화분에 흙을 다듬고 물을 주어두었는데, 며칠 잊고 있었다. 아내가 “화분에 싹이 나왔던데 그거 뭐야?” 하고 묻길래 “아, 그거 고구마.” 하고 대답했지만, 막상 가서 보니 그건 고구마가 아니라 나팔꽃이었다.
이제는 새싹 모양만 봐도 나팔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21년부터 23년까지 매해 나팔꽃을 키워봤으니, 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 나팔꽃 씨앗이 처음 온건 21년 봄. 막내가 유치원에서 씨앗과 화분을 받아오면서부터다. 좋은 흙을 골라 화분에 담았고, 그 흙 가운데 나팔꽃 씨앗 여러 개를 심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물을 주며 빨리 나팔꽃이 자라기를 기도했고, 우리의 기도를 들었는지 심은지 3일 정도 지났을 때 새싹이 흙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그때까지 나팔꽃의 특성을 몰랐기에 매번 물만 주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응원만 했다. 나팔꽃은 주변의 ‘줄’ 아니면 기타 다른 ‘물체’에 줄기를 감으면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나는 처음이라 당연히 다른 애들과 비슷하게 키가 커가면서 자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집 나팔꽃(이하 나팔이)은 키가 자라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 결국 키는 얼마 자라지 못하고 꽃을 피웠고 씨앗을 나에게 남겨주었다. 다른 곳에서 나팔꽃을 보면 줄기가 위로 쭉쭉 뻗으면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커 가던데 우리의 나팔이는 난쟁이 스머프처럼 작고 아담했다. 왜 그런지 등산을 하러 가는 길에 알게 되었다. 동네 길을 오르며 등산로 초입에 도착하려 할 때 나팔이를 키우는 화분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화분에 나팔이는 키가 무럭무럭 커 있었고, 꽃봉오리도 제법 여러 개가 맺혀 있었다. 그 화분은 우리 집 화분과는 차이가 있었다. 여러 지지대가 보였고 그걸 감싸 안으면서 자라는 나팔이를 본 것이다. 나의 무지가 우리 집 나팔이를 난쟁이로 만들고, 왜 키가 안크냐는 나의 구박만 비료로 준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러 사례들이 보이면서 하나같이 지지대 같은 있었는데, 나는 나팔이의 배경지식도 없이 당연히 물만 주고 사랑만 주면 키가 크고 꽃이 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나는 두 번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기존보다 더 큰 화분에 나팔이 아이들을 심었고, 새싹이 나오고 키가 크려고 더듬이처럼 나오는 줄기가 보이자마자 바로 지지대 및 주변에 줄을 설치해서 잘 타고 올라가게 환경을 만들었다. 이렇게만 하고 기다리면 될 텐데, 혹시나 줄을 못 찾을까 걱정이 돼서 최대한 나팔이 싹 옆에 줄을 바짝 대어 주었고, 그래도 안 될 거 같으면 줄기에 힘을 줘서 지지대 쪽으로 몸을 숙이게 끔 하기도 했다.

오늘도 베란다에 나팔이가 크기 위한 더듬이가 보여 ‘줄’ 설치를 했다. 예전처럼 너무 오냐오냐 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최대한 더듬이가 줄을 잘 찾게끔 최대한 근처로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서 딱 이 정도만 하자. 더 너무 배려하지 말자라고 선을 그었다. 집 밖의 나팔이 들은 얼마나 알아서 잘들 하는데, 우리 집 나팔이 들도 잘할 거라 믿으며.


아직도 자연의 이치를 몰라 신비한 경험을 많이 한다. 씨앗은 어떻게 흙속으로만 들어가면 싹이 나는지, 그 오랫동안 어떻게 버티면서 싹을 띄울 준비를 하는지? 정말 너무 궁금하고 신기하다. 아직도 예전 나팔이들에게서 얻은 씨앗들이 여러 알 있다. 삼각 꼴 모양을 하고 있고 초콜릿 빛깔을 가지고 있다. 얘네들이 흙 속으로만 들어가면 예쁜 나팔이들로 변해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꽃은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주로 피우는데 어느 씨앗이 파란색이고 분홍색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파리는 하트 모양이고 덩굴손은 주변에 있는 무엇이든 잡아서 지지대를 삼겠다고 길게 늘어트려 ‘마제트 만능 팔’을 연상케도 한다.

나팔이와 3년 동안의 동거를 통해서 나는 새싹이나 이파리만 봐도 나팔이 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나는 나팔이를 말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 나팔이가 다시 찾아왔다. 하필 여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에 찾아와서 걱정이 조금 되는데. 집에서 가장 따뜻하고 해가 많이 보이는 자리에 화분을 두었고, 주변 기온도 체크하기 위해 온 습도계도 가져다 놓았다. 이 무슨 성화냐고 너무 유난히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나에게 특별한 반려식물이기에, 그리고 잠시 잊었는데 이런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친구기에 유별을 더 떨 수밖에 없다.


나팔이를 보며 바람이 있다면 추위가 와서도 베란다에서 예쁜 꽃을 피우고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씨앗도 남겨 주기를 바란다. 내년 봄 엔 너의 아이들을 더 많이 심어서 우리 집 베란다를 나팔꽃 동산으로 만들고 싶다.

나팔꽃은 아침 일찍 피고 진다. 꽃을 맞이하기 위해선 서둘러야 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잠시라도 늦으면 꽃 봉오리는 닫혀 있고, 활짝 웃고 있는 나팔꽃은 이미지로 밖에 못 볼 것이다. 부지런함을 아침형 인간을 만들어 주는 나팔이와 다시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 다시 찾아와 준 나팔이와 아침의 영광을 같이 맞이 하고 싶다.


그 후 보름쯤 지나 나팔꽃이 피었다. 최종적으로 3송이가 피었고, 모두 파랭이 들이었다. 내년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남기며 꽃봉오리와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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